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11.14. 선고 2017나2019966 퇴직금 등
 

박재용 변호사(법무법인 청운)

1. 사실관계

원고들은 어학교육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J학원의 전직 강사들로 서울 강남구 대치 본원 외에 분당·수원·평촌 등의 분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원고들은 J학원과 매년 약 1년 기간의 강의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강의를 맡아 왔으며, 본인들은 노동법상의 근로자가 아닌 소득세법상 사업소득으로 분류되는 인적용역제공자(개인사업소득자)로서 강의용역을 제공하고,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강의 위수탁계약을 체결했다는 취지의 동의확인서를 함께 작성했다. J학원의 학급은 100% 담임제를 실시하고, 학원에서 자체 제작한 교재를 사용했으며, 학생들의 반 배정은 선택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레벨테스트를 거쳐 수준별로 반을 배정했다. 그리고 원고들을 비롯한 강사들은 학원에서 정한 서류전형, 면접·시강전형, 교육 절차를 통해 선발되고, 개별 강사들의 근무 장소는 강사들의 거주지 등을 고려해 J학원에서 최종적으로 지정했다. J학원은 강사선발 과정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통해 학원의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 학원에서 자체 개발한 통합관리시스템 사용방법, 강의 노하우 등을 전수했다. 원고들을 비롯한 강사들은 학원에서 배정해 준 학급의 학생들에게 학사일정에 따라 J학원에서 지정한 주교재를 가지고 오프라인 강의를 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했으며 학급 담임을 맡아 수업계획서 개발, 학급의 출·결석 체크, 내신관리, 학부모 상담 및 상담결과 보고 등을 했다. J학원은 일부 강사들에 대한 참관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원고들을 포함한 강사들의 보수는 수강생수에 따른 비율제로 강사료를 지급해 왔고, 일부 강사들의 경우 초기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액수를 보전해 주기도 했다. 원고들은 개인사업자인 학원강사로 등록돼 있어 J학원에서 매월 강의수입을 배분하면서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해 왔다.

원고들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J학원에서 재직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강의수입을 받아 왔으나, 퇴직한 이후 J학원을 상대로 강의 위수탁계약 형식이나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종속적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J학원은 원고들에게 퇴직금과 미지급 연차휴가수당·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며 퇴직금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 판결요지

서울고등법원은 ① J학원은 채용과정에서부터 강사들에게 학원의 수업자료를 바탕으로 시험강의를 진행하도록 하고,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학원의 커리큘럼·수업내용을 숙지하도록 교육시킨 다음 실제 수업 진행에 있어서도 통합관리시스템에 저장돼 있는 수업교재·수업내용·교수방법·숙제 등을 그대로 따라하도록 지시하는 등 강사와 상관없이 교육과정별로 통일성·일관성 있는 수업 진행을 추구했던 점 ② 수강생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강사를 좇아서 학급을 선택해 수강하는 구조가 아니라 J학원측에서 시행하는 레벨테스트를 거쳐 그 결과에 따라 수준별로 학급을 부여받게 되면, 학원에서 이미 수강인원이 확정된 학급에 강사들을 담임으로 배치하게 되므로 강사들의 개인 역량 및 인기도에 따라 수익 창출 범위가 크게 달라지는 이른바 ‘스타 강사’ 중심의 학원 구조와는 구분되는 점 ③ J학원은 강사들의 근속기간·경력·평정·학부모 평가 등을 고려해 매년 강사별로 고유의 수입배분비율을 정하고, 강사가 맡고 있는 담임 학급수와 학급 소속 인원수에 따른 수업료 수입을 수입배분비율에 따라 배분한 다음 이를 보수 명목으로 지급해온 점 ④ ‘대체수업신청’은 강사가 부득이한 사유(경조사·질병·예비군 등)가 발생할 경우 그에 관한 증빙서류를 갖춰 대체수업을 신청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등 그 명칭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휴가 신청’에 다름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J학원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원고들을 비롯한 강사들 중 일부가 자신이 원하는 교재를 사용해 강의하고, 다른 학원에서 강의를 하거나 J학원에 요청해 자신의 강의시간·근무 분원 등을 변경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예외적인 사례이거나 학원강사 업무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일 뿐이므로 그러한 부수적인 사정만 가지고 이들이 J학원과 사이에 위임관계에 있다고 볼 수는 없고, 원고들을 비롯한 강사들은 J학원과 사이에 종속적인 피용관계에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3. 판례 평가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확립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0.4.15. 선고 2009다99396 판결 등)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편으로는 실질적으로 임금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계약 관계임에도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용자측에서 기존의 판례를 분석해 여러 가지 우회 또는 회피 수단을 마련해 오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즉 사용자측에서는 위임계약서(이 사건에서는 강의 위수탁계약서) 작성에만 그치지 않고, 보험설계사들이 작성하는 것과 유사하게 동의확인서를 별도로 징구했는데 그 내용은 위임계약서를 강사 본인이 학원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숙지한 상태에서 본인 의사로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의확인서는 강사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개인사업자로 등록을 했다는 점을 강화함으로써 향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사용자측에서 강사와 위임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대등성 및 진정성과 관련한 입증을 수월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학원 내에 순수한 행정직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을 강사들에게는 그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을 동의확인서에 명시하는 한편, 실질적으로는 위임계약서에 유사한 내용을 녹여서 강사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제재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아울러 강사들에게 교재를 구입하게 하고, 교구 사용에 있어 일정한 자율성을 주는 등 마치 강사들이 학원과 대등한 관계에서 자율성을 누려 왔던 것처럼 운영해 왔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위와 같은 사용자의 노동법을 회피 또는 우회하기 위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강사와 학원의 관계에서 본질적인 측면에 주목해 강사들이 종속적인 근로관계를 제공하는 근로자임을 확인해 줬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종속적 근로관계 희석을 위한 장치가 더욱 교묘해지고 있고, 또 대상판결의 경우에도 1심에서는 원고들이 종속적 근로관계를 입증하는 자료가 부족해 패소한 것에 비추어 보면 향후에는 판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강사들이 평소에 학원에 재직 중일 때 학원과의 사용종속성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자료들을 꾸준히 확보해 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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