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방송사에서 막내작가로 일하는 B씨는 정해진 퇴근시간이 따로 없다. 메인작가가 회사에서 먹고 자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 들어가는 게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그는 “막내작가를 붙잡아 두고 퇴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메인작가가 ‘눈치를 봐야 할’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며 “메인작가의 인신공격성 발언이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따금 떠올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입봉을 앞둔 방송작가 10명 중 7명이 ‘막내’로 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가 이 같은 호칭이 불필요한 위계질서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직장갑질119와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숲이 12일 공개한 설문조사 내용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5일부터 18일까지 온라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입봉 전 생활을 해 봤거나 하고 있는 전현직 방송작가 279명이 참여했다.

이들에게 입봉 전 호칭을 묻자 70.3%가 "막내작가"라고 답했다. 자료조사(스크립터·리서치)와 취재작가가 각각 14.3%와 6.8%로 뒤를 이었다.

이 같은 호칭에 대해 72.8%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호칭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복수응답)로는 67.7%가 “업무 외의 심부름 등 잡일까지 쉽게 시키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작가뿐 아니라 팀 전체 막내로 취급받는 것 같다”(54.1%)와 “내가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하고 늘 보조취급을 받는 것 같다”(37.3%)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입봉 전 작가에게 대한 적절한 호칭에 대해서는 ‘작가’(위계를 포함한 단어가 없는)가 43%로 조사됐다. 보조작가(14%)와 취재작가(12%)를 꼽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막내라는 가족적인 호칭을 마치 직장에서 직위인 양 사용하는 것은 방송 이외 업종에서는 거의 드문 일”이라며 “업무 외적인 측면에서 위계질서를 구분하고 그 질서상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로 규정짓는 의미가 담겨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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