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약입니다. 대통령께서 결단해야 합니다."

11일 정오 정부세종청사 인근 인사혁신처 건물 로비 앞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연월(52·사진) 공노총 위원장의 표정은 단호하면서도 절박했다. 이 위원장 뒤에는 '단식투쟁 1일차' 팻말이 놓였다. 박근혜 정부가 무보직 4급과 5급 공무원에게까지 확대한 성과연봉제 시행 중단을 요구하며 인사혁신처 앞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이날로 57일째, 이 위원장은 결국 곡기를 끊었다.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노사합의 없이 강압적으로 도입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 마찬가지로, 2015년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공무원 성과연봉제 확대방안 또한 중요한 근로조건 변동 사항임에도 당사자 의견수렴은 없었다.

1999년 처음으로 도입된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은 3급(과장급)까지였다. 단계적 확대를 거쳐 4급 과장급 이상에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박근혜 정부 인사혁신처는 올해까지 순차적으로 5급 전체로 확대해 적용하기로 했다. 공무원들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책은 강행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올해 3월 공노총 출정식에 참여해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와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에 따라 정부는 집권 직후 곧바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폐지했다. 그런데 공무원 성과연봉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이연월 위원장은 "정부가 왜 유독 공무원 성과연봉제 폐기에 소극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99년 도입된 이래 지난 20년 가까이 성과연봉제가 공공서비스 협업체계를 무너뜨리고 조직을 망치는 제도라는 게 눈으로 확인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공무원에 대한 차등적 금전보상이 생산성을 높여 주지 못하고, 되레 개인적이고 단기적인 업무수행에 매달리게 만들어 공무원사회 팀워크 붕괴와 행정서비스 질 하락, 줄세우기 부작용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20년 가까이 유지된 제도를 일시에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공노총이 전문가를 포함한 논의기구를 만들어 노정이 함께 기존 제도를 평가·점검한 뒤 제대로 된 공무원 평가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한 배경이다.

공노총과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협의를 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가 "성과연봉제 폐지를 검토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의가 어그러졌다.

"인사혁신처는 성과연봉제 폐지를 목표로 한다면 대화할 수 없다고 한다. 다 내려놓고 일단 논의기구에 들어오라고만 하는 거다.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벌겠다는 건데, 어떻게 응할 수 있겠나."

이 위원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부터 무보직 4급과 5급 공무원들에게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올해 성과평가 기준에 따른 성과연봉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며 "인사혁신처는 전임 정부에서 확대 시행된 4·5급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공무원 성과주의 전면 재검토를 위한 제대로 된 노사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국민을 위한 참된 봉사가 높은 가치로 평가받는 공무원사회에서 일하고 싶다. 정권 하수인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 싶다"며 문 대통령 결단을 요구했다.

한편 공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연월 위원장 단식농성 소식을 전하며 "단식농성의 마지막은 죽음 아니면 인사혁신처의 태도 변화 둘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이용득 의원은 "대국민 서비스의 질적 향상보다 노동자 임금을 볼모로 양적 성과만을 강요하는 이 제도를 무엇을 위해 도입했는지 모르겠다"며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성과주의 전면 재검토를 위한 노사협의체를 구성해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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