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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119 오프라인 가면무도회] “직장갑질 피해 아픔 나누고 노하우도 얻었어요”"가면 뒤 경험 나누면서 치유받아" … 갑질 대응방법도 공유
   
▲ 직장갑질119
“아아, 선배님!”

한 남자의 입에서 “갑질 선배님”이라는 단어가 절로 나왔다. ‘(회사에서) 갑질(을 미리 당해 본) 선배님’이라는 의미다. 또 다른 중년 남자가 직장갑질 경험담과 대응법을 말하는 것을 듣는 동안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연신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갑질 피해자 잡담회인 ‘가면무도회’를 열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자는 취지로 모인 민간공익단체다.

지난 한 달간 오픈채팅방(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SNS 단체채팅방)에서 회사로부터 당한 갑질 피해 경험을 공유하던 이들은 이날 처음 만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1일 출범과 함께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픈채팅방 가입자 790여명 중 10여명이 함께했다.

참여자들은 신상 보호를 위해 노란 종이봉투로 만든 가면을 쓰고 행사장에 모였다. 가면에는 앵그리버드를 비롯해 울거나 화나거나 상처받은 표정의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시야 확보를 위해 가면의 눈 부분만 직사각형으로 뚫려 있었다. 후반부엔 대다수가 가면을 벗고 이야기했지만, 신원 공개를 원치 않는 일부는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았다. 1부 ‘2분 발언회’ 순서에서 참여자들은 가면 뒤에서 자신이 직장에서 받은 상처를 털어놓았다.

“지방 대기발령 받고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었어요”

“윗사람에게 아부를 잘 못하는 성격 탓에 회사에서 밀려났어요.”

닉네임 ‘닥터지바고’는 5년 전부터 희망퇴직을 권유받았다고 말했다.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그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해고시켰다. 법적 투쟁을 거쳐 복직했지만 회사는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 기획 파트에서 일하던 그가 공장 엔지니어링 부서로 전출됐다. 닥터지바고는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토로했다.

닉네임 ‘새날이 올 때까지’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2년째 보직이 해임된 상태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 보직 해임되고 두 달을 지방 공장에 대기발령 상태로 있었어요. 밤에 원룸에서 혼자 있을 때 많이 울었지요.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니다. 회사가 나의 직위와 명예를 다 빼앗았지만 내 자존심은 못 뺏는다. 어떻게든 상대해서 이기겠다’고 혼자 되뇌었지요.”

새날이 올 때까지는 “직장갑질119에서 도움을 준 것이 큰 힘이 됐다”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피해자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닉네임 ‘계룡선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조에도 찾아가 보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물어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합의하지 마라, 기록 남겨라” 대응방법 공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향한 위로는 깊어졌다. 한 시간의 ‘발언회’가 끝나자 두셋 혹은 무리지어 앉은 자리에서 이들은 갑질 대응 ‘노하우’를 공유했다. 피해자들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새날이 올 때까지는 카페 한쪽 구석에서 닉네임 ‘리쫑’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인(합의)하지 마라, 멘탈 관리 잘하라. 이런 원칙을 지켜야 해요. 회사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스스로 무너지게끔 모욕감을 주는 거거든요. 왕따도 시키고. 그렇게 상대를 무너뜨리는 시나리오를 회사끼리 공유한다니까요.”

리쫑은 직장상사 괴롭힘에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최근 회사가 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가능하도록 내부 규정을 바꾼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귀띔했다.

“선배님 말씀을 들으니 저는 아직 폭풍전야네요. 선배님 덕분에 제가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 알게 됐어요.” 조언을 들은 리쫑이 활짝 웃어 보였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대여섯 명이 전략을 공유했다.

“오히려 더 세게 나가야지. 눈치 보면서 ‘해도 되나 안 되나’ 하면 힘들어요.”

“회사에서 겪은 일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울먹이며 사연을 발표했던 계룡선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피해자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회사에) 선례가 없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곳에서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닉네임 ‘부지런한 워킹맘’은 "혼자 대기업과 싸우는 게 약간 겁나기도 했는데 힘을 얻어 간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직장갑질119은 앞으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직장갑질 근절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직장갑질119 총괄스태프 오진호씨는 “직장갑질을 겪는 분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디에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외로움”이라며 “서로 모여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참석자들이) 굉장히 많은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갑질로 고통받는 직장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다양한 기획을 준비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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