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신한은행 임원 수행 운전기사들이 하루 15시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5시간 휴게시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신한은행 한 지역본부에서 운전기사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본부장이 사용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해당 운전기사가 장시간 노동과 대여통장 문제를 제기하자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신한은행은 대여통장과 체크카드를 운전기사에게 반납했다.

“동의했다고? 통장 비밀번호도 몰라”

4일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본부에 따르면 신한은행 지역본부 본부장 수행 운전기사인 A씨가 장시간 노동과 대여통장 문제를 지적하며 지난달 23일과 24일 신한은행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러자 신한은행과 파견업체는 A씨를 지난달 27일부터 업무에서 배제했다. A씨는 “오전 8시에 해당 지점으로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주차장 옆 대기실에 앉아 있다”며 “파견업체가 출퇴근을 전화로 체크하는 것 외에 어떠한 업무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에 휴게시간 미사용분에 대한 체불임금 진정을 넣고 대여통장 문제를 제기하자 업무에서 배제시킨 것”이라며 “하루 두 끼 지원되던 식비도 12월부터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파견업체를 통해 신한은행 지역본부 본부장 수행 운전기사로 취업했다. 입사 3일차인 같은해 1월12일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차장 말에 따라 창구에서 통장을 개설했다.

A씨는 “올해 10월 대여통장 문제를 제기하자 은행에서 ‘동의하에 만들었지 않느냐’고 했다”며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월급통장이 필요한 줄 알고 따라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차장이 메모지에 통장 비밀번호를 적어 와서 보여 줬다”며 “내 통장이라면 당연히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지만 통장개설 당시 비밀번호를 누른 후 단 한 번도 비밀번호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또 “통장 개설 한 달 뒤쯤 체크카드를 하나 더 만들어 본부장에게 줬다”고 전했다.

A씨가 제공한 통장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1월12일부터 체크카드를 추가로 발급받기 전인 2월20일까지 대략 한 달간 사용한 금액은 주유비와 주차비밖에 없다. 그런데 2월20일 이후부터 가양·탄현·김포 등 곳곳의 신한은행 지점에서 적게는 2만원대부터 많게는 118만원까지 입금됐고, 커피값·택배비·청소비 등이 수차례 출금됐다.

A씨는 “내가 사용하는 통장이라면 하루에 여러 지점에서 수차례 돈이 들어올 수가 없다”며 “체크카드 하나는 내가 가지고 주유비에 썼고, 하나는 본부장이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업무 위한 대기시간은 노동시간”

A씨는 수행 운전기사의 장시간 노동 문제도 제기했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A씨 근로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근로시간 15시간 중 휴게기간 5시간을 제외한 10시간이 실근로시간이다. 하지만 A씨와 그의 동료들은 “본부장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5시간을 쉬어 본 적이 없다”며 “본부장이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새벽 2시까지 차에서 대기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신한은행 지역본부 본부장을 수행하는 운전기사 B씨는 “A씨가 문제를 제기한 후 휴게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30분까지,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5시간으로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며 “해당 시간은 본부장이 제일 바쁜 시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간의 운행기록을 증거로 지난달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에 체불임금 실태를 진정했다.

이규홍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나원)는 “운전기사 휴게공간도 없을뿐더러 휴게시간이 있다 해도 업무 특성상 쉴 수가 없다”며 “대기실에 TV나 소파가 있더라도 본부장이 호출하면 언제든 뛰어나가야 하는 만큼 휴게시간이 아닌 대기시간”이라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한 것은 보복성 대기발령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파견업체 관계자는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A씨 주장에 대해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진정을 제기했다”며 “A씨 계약기간이 내년 1월8일까지로 그동안 쉬지 못했던 부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운행을 따로 시키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여통장 논란과 관련해 “신한은행에서 조사하고 있다”며 “자체조사 후 결과가 금감원에 넘어오면 타당성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는 대여통장 문제와 관련해 신한은행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담당자가 휴가 중이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정의당 비상구 소속인 최강연 공인노무사는 “작업을 위해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이라며 “운전기사들이 파견업체 소속인 데다 길어야 2년이면 은행을 떠나야 한다는 점을 악용해 대리통장 같은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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