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결국은 인력문제입니다. 병원문화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데, 인력마저 부족하다 보니 감정 배출구 없이 갑질 문화로 번진 거죠.”

나순자(53·사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자의 시선은 인력난 해소에 쏠려 있었다. 최근 성심병원 사태로 드러난 병원 갑질 문화의 근본 원인도 "결국은 인력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갈했다.

나순자 당선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병원 갑질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사회적으로 이슈화됐으니 갑질 문화를 다 드러내고 근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이화의료원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달 21~23일 조합원 직접투표로 치러진 임원선거에 단독출마한 나순자 당선자는 노조 8대 위원장에 선출됐다. 내년 1월 위원장 임기(3년)를 시작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노조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력부족이 부추긴 병원 갑질 문화”

-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변화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선됐다.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

“노조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저지투쟁만 했다. 쟁취투쟁은 거의 해 보지 못했다. 이제는 20년 산별노조로서 추진한 것들을 성과로 만들어 낼 시기다.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도 있다. 2008년 5대 노조 위원장에 당선됐을 때는 이렇게 부담감이 크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 번 했으니까 더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주요 공약으로 현장 인력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병원 인력과 관련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현장 관심도 크다. 현장순회에서 인력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박수를 쳤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만 일하게 돼 있음에도 수당 없이 1~2시간 더 일하는 게 기본이다. 인력이 없어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다. 대학병원 이직률이 15%, 중소병원은 20~30%에 이른다. 성심병원 사태로 공론화한 병원 갑질 문화도 인력부족이 기폭제가 됐다고 본다.”

- 병원 갑질 문화와 인력부족이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병원 문화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위계질서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수직적 문화가 갑질 문화로 이어지는 것은 인력부족 탓이 크다. 우리나라는 병원 인력이 부족하다. 선배가 자기 일도 버거운 상황에서 후배까지 가르친다. 후배가 조금만 실수해도 짜증부터 내게 된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쌓이고 쌓여 성심병원이나 을지대병원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착화된 문제다. 터져야 할 문제가 터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신규직원이 들어오면 신입을 가르치는 일을 전담하는 프리셉터가 있다. 한국과 비교되는 모델이다.”

- 인력부족 문제 해결과 갑질 문화 근절을 위해 어떤 방안을 모색하고 있나.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축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보건의료인력법 제정 추진과 보건의료 분야 특별위원회·노사발전재단 주최 보건의료 노사미래포럼 논의가 대표적이다. 임기를 시작하면 이를 총괄할 수 있는 방안을 제대로 만들겠다. 병원 갑질 문화 근절과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성심계열 6개 병원을 대상으로 수시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전 병원을 대상으로 조치하겠다는 발표도 했다. 노조도 자체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 중이다. 노조 소속 사업장 갑질 문화 전수조사를 하려고 한다. 지금이 기회다. 이왕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으니 더 많은 갑질 문화를 드러내고 근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5대 위원장 시절 보건의료 산별교섭 중단, 정상화 책임감 느껴”

- 대정부 교섭과 관련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건가.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려 한다. 인력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협회·의사협회 같은 세력의 반대를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재정 확보방안 때문이다. 그런 만큼 단순히 정부와 대화·교섭만으로는 우리 의견을 관철하기 어렵다고 본다. 조합원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투쟁 의지를 가져야 한다. 2004년 산별파업에 버금가는 전국적인 투쟁을 할 생각이다.”

-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사회적 대화가 이슈로 떠올랐는데.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대화 참여가 민주노총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생각도 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참여는 이르지만 노정 교섭이나 노사정 대화는 해야 하지 않겠나.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지금은 정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화 상대가 있는데도 무조건 거절만 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민주노총이 (정부와의 만남 자리에) 가서 우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과정에 문제가 있었으면 그것을 정확하게 짚고 풀면 된다. 지난 청와대 간담회와 만찬 때 민주노총이 불참했는데, 민주노총이 청와대에 가서 우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운동을 다니면서 만난 조합원들 중에도 ‘왜 민주노총이 만찬에 안 갔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장 조합원들의 열망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 노조 선거운동 과정에서 산별교섭 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위원장이었던 2009년 이후부터 국립대·사립대병원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 불참하고 있다. 산별교섭 정상화에 책임감을 느낀다. 이명박 정권 때 당시 사회적 분위기 영향도 컸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산별교섭 법제화를 많이 강조한다. 산별교섭 법제화에서 시작해 산별교섭이 제대로 정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년 2월28일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11월에는 전태일노동상을 받았다. 노조가 산별노조로서 연대와 평등 정신을 잘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투쟁 사업장인 인천성모병원·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복직과 노조 정상화, 성남의료원·진주의료원·부산침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 재개원 투쟁을 조직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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