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노동법 개악 저지’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했다. 1년 만에 회의자료에 공식적으로 다시 오른 표현이다. 무슨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노동개악을 자행한 지난 정권이 물러난 마당에 또다시 노동법 개악 저지라니. 지난 주말부터 노동계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른바 통상임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논의됐기 때문이다.

연장노동과 주말노동에는 각각 50%의 할증임금이 추가로 지급되고, 둘이 중복될 때는 50%+50%가 돼야 한다. 내년 1월 대법원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법원 판결 대부분은 중복할증이 근로기준법 취지임을 분명히 해 오고 있다. 노동계도 같은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휴일근로와 연장근로가 겹치는 경우라도 오직 한 번 50%만 할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바로 지난 정부 여당이 ‘기업의 어려움과 초과근로 조장’을 운운하며 추가 할증에 반대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우리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 상황이 연출됐다. 지금의 여당, 그러니까 지난 정권에서의 야당은 당시 여당의 중복할증 반대 주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고 노동존중 사회를 위해서라도 중복할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입장은 최근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주 비록 간사 간 합의이긴 하지만 여당과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중복할증이 아닌 단 한 번만 50% 할증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는 합의였다.

아주 험하게 말하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제대로 찍힌 모양새다. 대다수 노동자가 이번 정권을 지지했다. 특히 한국노총은 100만 조합원 총투표로 이번 정권과 정책연대협약까지 일궈 냈다. 실제 많은 공약과 정책, 특히 노동 분야에서는 한국노총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다. 통상임금 문제와 노동시간단축은 그야말로 노동계에 가장 절실한 핵심 정책이 아니던가. 이를 알고도 남을 여당이 과거 자신들이 극구 반대하던 당시 여당의 정책을 그대로 좇다니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이 많다. 한국노총 내외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으로 개악 논의는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곧 다시 들고나오지 않겠나. 짧은 기간이지만 지난 7개월 정부와 여당은 몇몇 굵직한 노동정책을 실천했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현재 한창 진행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까지. 진정성과 결과 모두에서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그 결과 정권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이러한 자신감으로 여당 일부에서 노동시간단축과 초과노동에 대한 중복할증 사안도 밀어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도 누누이 지적했지만, 몇몇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정책은 그 집행 과정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켜켜이 쌓인 적폐를 걷어 낸다기에 급하게 처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해석 폐지나 단체협약 시정명령 중단 같은 행정조치가 그런 종류일 게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방향은, 너무나 당연해서 그 결과가 바뀌기 어려운 문제라 하더라도, 반드시 해당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숙의 끝에 집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집행의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이번과 같은 과오가 없다.

진심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위와 같이 합의하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짧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너무나 많다. 지난 30여년간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한 노동입법은 언제나 노동자의 명시적인 양해가 그 전제였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권은 어김없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장 가까이 박근혜 정권이 있지 않은가. 노동자를 버렸기 때문에 정권을 잃었고 노동자의 지지로 민주정부가 탄생하지 않았는가.

이번 사건은 노동계와 정부 그리고 시장 모두에게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각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단계는 아니리라. 다만 같은 상황이 누적되면 불신이 되고 급기야 적보다 못한 남이 되기 마련이다. 과거의 값비싼 경험이 있다. 지금의 정부 못지않게 노동자와 시민을 존중했던 참여정부를 돌아보라. 불과 1년 만에 노동과 정부는 척을 지고 말았다. 더 이상 대화가 없었고 정책은 산으로 가지 않았나. 알다시피 비정규직법이나 교섭창구 단일화 같은 제도적 기초가 그 당시 만들어졌다. 노동과 함께하지 않으면 실패는 분명 반복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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