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대학에서 스타일리스트학과를 졸업해 교수님 추천으로 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한 곳에서는 근로계약서 없이 월 80만원을 받으며 밤새 일했다. 건강이 나빠져 그만뒀지만 꿈을 포기하기에 일러 다시 같은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근로계약서 없이 월 30만원을 받았다. 사무실과 숙소가 같은 건물에 있어 24시간 대기하며 일했다. 무거운 옷가방을 들고 다녀도 교통비가 나오지 않았고 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타면 사비로 처리했다. 결국 정신적 체력적으로 무너져 스타일리스트 꿈을 접어야 했다.”(24세 전직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A씨)

유명 스타와 일하는 스타일리스트는 더 이상 꿈의 직업이 아니었다. 스타일리스트 98.5%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89.9%는 1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했고, 92.1%는 100만원 이하 저임금을 받았다.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지부장 김정임)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노동권익센터 회의실에서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유명 스타 뒤의 유령 여성노동자”라는 부제가 붙었다.

10명 중 9명 초장시간·초저임금 노동

서울지부가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스타일리스트 노동자 20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이날 보고회에서 공개했다. 설문조사 참가자의 93.6%가 여성이었고, 97.5%가 20대였다. 근무기간은 1년 미만이 70.0%를 차지했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밑에서 일하는 경우(94.8%)가 다수를 이뤘다. 실장 또는 팀장이라고 불리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의 어시스턴트(보조)로서 사적 관계로 일하는 형태다. 98.5%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 참여자의 89.9%는 10시간 이상 근무했다. 12시간 이상 일한다는 노동자는 63.5%나 됐다. 20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자는 6.9%였다.

임금은 초저임금 수준이었다. 92.1%가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이 중 50만원 이하가 44.5%로 절반에 육박했다. 전형적인 열정페이다. 98.5%는 현재 일자리에서 4대 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았고, 연차휴가도 적용되지 않았다. 96.1%는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98.0%는 퇴직금이 없다고 답했다.

부당한 대우에 속수무책이었다. 노동착취 등 부당한 대우에 51.5%는 “개인적으로 참고 넘겼다”, 32.2%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83.7%가 아무런 대응도 못한 것이다.

채용구조·임금체계 공식화로 노동권익 보호해야

이날 보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임금은 최저임금과 거리가 먼 초저임금 수준이었고, 업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체계와 규정이 결여됐다”며 “노동시간에 관한 규정도 없이 24시간 대기하는 등 무제한적인 노동시간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부분 교수 소개로 취업했는데, 대학 재학 중이거나 졸업 뒤 취업하면서 경력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교육생 대우를 받고 있었다”며 “노동자 지위의 불안정성이 노동착취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토론자로 함께한 김재민 센터 연구위원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연예인 매니지먼트라는 화려한 산업 이면에 존재하는 편법적 노동관행과 업계 담합이 드러났다”며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은 여성노동자 집중 업종과 차별실태를 찾아내 보호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숨겨진 여성노동자를 발굴·지원하기 위한 여성노동회의소(가칭)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비공식 채용구조를 개선해 자격증 또는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을 노동자로 채용하고 권익을 보호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고회는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사회로 진행됐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과 조성주 서울시 노동협력관이 토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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