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울 공인노무사

미투(Me too) 운동이란 최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성추문 사태를 두고, 한 여배우가 제안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을 말한다. 여배우는 트위터 등 SNS에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미투(Me too)’라고 써 달라”고 했고, 50만명 이상 많은 여성(간혹 남성)들이 리트윗하면서 하나의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샘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보도되면서 여기저기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누군가의 용감한 폭로에 힘을 낸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우리 사회도 미약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Me too’에 동참하기 위해 내야 할 용기의 무게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한샘 피해 여성은 왜 성폭행 이후 ‘ㅎㅎ’ 카톡을 보냈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 댓글이 무려 3천474개나 달렸을 만큼 네티즌 반응이 뜨거웠다.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 내용은 놀랍게도 "성폭행 당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대화 내용이 아니다"였다. 그들이 말하는 피해자의 정상적인 반응이란 무엇인가. 물론 범죄사실을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부정하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대화를 무시하고, 곧바로 성범죄 증거를 수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범죄 피해자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런 피해자의 대응이 일반적일 수 있었다면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Me too' 운동에 동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 피해자가 가져야 할 정상적인 반응을 논하기 전에 왜 피해자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야만 직장내 성폭력을 이해할 수 있다.

직장내 성희롱이란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라 함은 본인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직장이란 어떤 의미이겠는가. 노동자들에게 직장이란 생계를 위해 매일 같은 자리에 서야만 하는 곳이지, 흥미가 떨어지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대학 동아리 같은 곳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이 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서 발생한 성범죄는 표면으로 드러나기조차 쉽지 않다. 범죄 피해가 인정되더라도 다음날 피해자는 범죄를 떠올리는 자리에서 노동을 해야 한다. 거기에 ‘얼마나 예뻤기에’ 혹은 ‘왜 당시에 대응하지 않고 이제야’ 같은 소문에 2차 피해를 입고 버텨 내야 한다.

여기서 잠깐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26세 여성노동자다. 물론 이런 직장내 불공정한 사건을 해결하는 노무사라는 직업이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신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사회는 노무사보다 여성으로,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으로 더 많이 다가왔다. 그렇다. 나는 지금 용기 내어 ‘Me too’에 동참하고자 한다. 나 역시 직장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많은 피해자들처럼 즉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해자를 대하려고 애썼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런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이해해 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든 범죄 피해자에게 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그런 반응을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에서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예방은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죄 예방은 공동체에서 이뤄져야 한다. 직장내 성희롱 역시 그러하다. 사내에서 구성원들에게 직장내 성희롱의 개념을 명확히 교육하고,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가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이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사건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이미 발생해 버렸다면 이에 대응하는 것 또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직장’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일인 만큼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느끼고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자. 우리 주변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Me too’가 있다는 사실을.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