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숙경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요즘처럼 바람이 차가워지던 십여년 전 어느 겨울이었다. 늦은 밤 회의를 마치고 지금의 이미숙 후보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네 살짜리 아이와 함께 말이다.

아이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다. 분식집에 앉아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미숙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한테 키워 달라고 해야 할까 봐요. 도저히 데리고 다니면서는 못할 거 같아요….” 그때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없는 건 없어. 부딪쳐 보지 않고 벌써부터 겁먹지 마. 하다 보면 할 수 있게 되더라.”

그 아이가 자라 군대에 간 지금껏 “할 수 없는 건 없다”던 미숙 언니의 걸음은 보건의료노조 지역본부장에서 부위원장, 민주노총 부천시흥지구협의회 의장, 또다시 현장 지부장을 거쳐 민주노총 사무총장 후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숙 언니는 가톨릭병원 노동자다. 종교재단 사업장의 특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조합원의 혼전 임신을 문제 삼아 권고사직을 시키겠다는 징계 통보였다.

그 조합원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노동조합은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병원의 고집은 계속됐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던 병원을 상대로 한 명의 조합원을 위한 미숙 언니의 단식투쟁이 시작됐다. 식당 앞에 앉아 한 명의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굶었다. 돗자리 깔고 앉은 미숙 언니 모습을 보며 왜 우리가 노동조합을 하는지, 나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 다시 생각했다.

미숙 언니는 마티즈를 타고 다닌다.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지방에서 회의를 마치고 올라오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져 차가 전복됐다는 소식이었다. 동료들의 가슴이 땅끝까지 떨어진 그때, “다치지 않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미숙 언니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하늘이 아직 내가 할 일이 있다고 보는지 무사해. 다치지도 않았고.” 머쓱한 말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미숙 언니를 병원에서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냐고. 사실은 차가 전복되던 순간 지나간 삶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가더란다. ‘아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고. 그런데 차만 뒤집혔지 아무런 충돌이 없는 순간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기어 나오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기호 4번 이미숙 후보가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결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할 수 없는 건 없다’ ‘부딪쳐 보지 않고 포기하지 말라’던 뚝심과, 단 한 명의 조합원을 위한 단식투쟁의 진심, 그리고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얻은 ‘덤으로 생긴 삶’이라는 담대한 자기 인식은 민주노총의 ‘새판 짜기’에 더없이 적합한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추위를 뚫고 전국의 조합원들을 만나며 새로운 민주노총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이미숙 후보를 지지한다.

더구나 그는 매사에 꼼꼼하고 지역 노조운동의 여러 고민과 갈등을 슬기롭게 중재하고 단결을 만들어 온 활동가였다. 민주노총에 여러 과제가 있지만, 지역과 산별노조를 아우르는 통합력은 지금의 민주노총에 꼭 필요하다. 사무총장의 자리에 더 없이 어울린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꿋꿋하게 모든 책임을 다해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을 지켜 온 노동자, 기호 4번 사무총장 후보 이미숙의 당선을 기대한다. 이제 현장과 지역에서 그와 함께 수십년을 함께했던 이들만이 아니라, 80만 조합원이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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