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미국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해 준 책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는 포도처럼>이라는 소설이다. 1939년 출판된 이 책은 미국에서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존 스타인벡이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1962년에야 번역됐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공장과 농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이러한 고통과 불합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간주의 가치지향과 그런 가치의식에 입각한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커다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세계는 다시 1930년대에 비견되는 대불황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통합돼 있음으로써 이 태풍권 안에 들어가 있다. 따라서 우리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나라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물질주의에 찌든 국민의 가치지향을 깊이 성찰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전태일 동지가 촉구했듯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금전대의 부피 즉 물질적 부보다 인간의 가치 및 윤리와 희망 즉 인간적 부를 우선시해야만 할 순간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처럼 구호로 “사람 사는 세상”또는 “사람이 먼저”라고 하면서 실천적으로 착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본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므로 결국 헛된 환상을 쫓은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존재 자체가 임금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임금노동자의 존재는 인간을 토지나 기계 및 원료와 마찬가지의 생산요소인 가변자본으로서 물질화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물질적 가치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임금노동자로서, 불변자본으로서 물질화되는 것이 폐지돼야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다른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분노는 포도처럼>에서 말하고 있듯이 수많은 분노의 포도알들이 포도송이로 서로 뭉치고 또 그런 분노의 포도알들이 영글어야만 할 것이다. 즉 노동자의 의식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틀 안에서 노동력 상품 판매자로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겠다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더 이상 생산요소로, 가변자본으로, 노동력 상품으로, 물질적 존재로 파악되고 매매되지 않겠다는 의식으로 상승돼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분노의 포도알들이 포도송이로, 포도넝쿨로, 포도밭으로 거대하게 어우러져서 자본계급과 맞짱을 뜨는 노동계급으로 형성돼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계급으로 결집시켜야 할 노동자는 얼마나 되나? 현재의 노동운동은 현실을 변혁하는 데 큰 관심이 없으므로 계급을 형성하는 데도 별 관심이 없다. 며칠 전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서도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라는 말은 무성했으나 그 모든 노동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듣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통계는 노동자 숫자가 얼마인지 그리고 그 노동자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며칠 전 10월 고용동향 발표는 종전의 은폐를 조금 완화했다.

하나. 경제활동인구 통계가 개선됐다. 15세 이상 인구 4천382만8천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2천775만1천명이다. 비경제활동인구가 1천607만6천명인데, 이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야 할 사람들로서 잠재경제활동인구다. 이 잠재경제활동인구가 163만4천명이나 된다. 잠재경제활동인구는 잠재취업가능자(4만7천명)와 구직 단념자 48만3천명을 포함한 잠재 구직자(158만7천명)를 합한 것으로, 이를 합치면 경제활동인구는 2천938만5천명이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활동인구 개념을 확장경제활동인구로 확대해도 문제가 남는다. 취업준비생이 68만2천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확장경제활동인구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 취업준비생을 잠재경제활동인구에 포함시킬 경우 확장경제활동인구는 3천만명이 넘는다. 경제인의 나라다!

둘.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임금노동자는 공식 통계로는 1천994만5천명이다. 이 수치는 취업자만을 포함하며 실업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는 포함하지 않아 실업자수를 축소한다. 실업자 89만6천명과 잠재경제활동인구 163만4천명도 대부분 임금노동자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또 여기에다 취업준비생 68만2천명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또 1인 자영업자 400만여명 가운데 특수고용직 230만여명도 임금노동자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국인만 해도 대략 2천545만7천명이 될 것이다. 여기에 100만명 가까운 이주노동자를 합하면 2천6백만명을 훌쩍 넘는다. 노동자의 나라다!

셋.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가 있듯이 실업은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는 노동자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가한다. 대불황 국면은 바로 이런 고통스러운 상태를 보편화한다. 정부 공식 실업률은 매우 과소평가돼 왔다. 지난 10월 현재 실업자는 89만6천명이고, 실업자는 경제활동인구의 3.2%(실업률)다. 이 정도면 완전고용에 가깝다. 그러나 이 수치는 피부로 느끼는 실업자수·실업률과 한참 괴리돼 있다. 사실상 실업자인 잠재경제활동인구를 분모와 분자에 모두 포함해 계산할 경우 실업률은 8.6%고, 추가 취업을 원하는 불완전고용 노동자를 실업자에 포함할 경우 실업률은 10.4%나 된다. 여기에 취업준비생을 합하면 실업자수와 비율은 더 높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실업자는 400만명에 이른다. 실업자가 천지다!

넷. 청년세대에게, 그 가운데서도 여성에게 실업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자와 실업률은 37만1천명으로 8.6%다. 이것은 새천년 들어 가장 높은 수치다. 더구나 추가 취업을 원하는 불완전고용 노동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 등 사실상의 실업자를 포함할 경우 21.3%로 치솟는다. 여기에 잠재경제활동인구에도 포함되지 않는 70여만명의 취업준비생을 더하면 실업률은 더욱 높게 될 것이다. 청년세대 가운데서도 여성의 경우는 어림잡아 평균치의 두 배에 이를 것이다. 여기에 취업자 셋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를 더해 보자! 청년들에게는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이 문제를 과연 헬조선 수구체제를 변혁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수술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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