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이달 초 상담을 개시한 ‘직장갑질 119’에 근로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직장갑질 119에 제보된 병원 내 간호사에 대한 부당한 요구 등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아가 최근 직장갑질 119는 ‘2017 시다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야말로 노동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부당 대우들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근로자들이 호소하는 사용자들의 갑질 내용은 임금 체불, 장시간 근로 강요, 연차휴가 강제소진, 해고·징계 등 부당한 대우, 산업재해 발생시 미온적 대응, 성희롱 등 일터 내에서의 괴롭힘 등 다종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사용자의 폭언·욕설 등 근로자에 대한 모욕행위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 최근 유행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우연히 시청하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프로그램 지원자가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른 뒤, 어느 심사위원에게 “자격이 없다” “평생 노력해도 안 될 것” “빨리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서럽게 울고 있는 장면 앞에서 말이다.

혹자는 애초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다른 길을 권한 것은 심사위원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며, 준비 상태 부실에 일침을 가해 성실한 연습을 독려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또 본인들이 현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선배들에게 이보다 더 호된 야단도 많이 맞았는데, 이 정도가 무슨 문제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심사위원이 지원자를 심사하고 그중 일부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심사위원에게 선발·지도와 관련한 일정 권한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불편했던 지점은 지원자가 처한 지위상의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원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지원자를 모욕하는 행위가 횡행하고, 프로그램은 이를 마치 지원자들이 견뎌야 하는 “적절한 자극” 정도로 묘사하는 듯한 부분이었다. 만약 내가 지원자로서 현장에서 심사위원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듣게 됐다면 어떤 느낌일까, 곧바로 항의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불쾌하고도 무력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용자와 근로자 관계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노동력을 임금을 통해 구매한 것일 뿐, 근로자의 노예노동을 구매한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용인될 수도 없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근로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 의무가 있다. 그러나 “2017년 시다”들이 노래하듯, 오늘날 일터는 폭언과 욕설, 인신공격 등 사용자의 일상적 모욕행위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자신의 인격을 타인에게 부정당하거나 훼손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이유로라도, 타인을 모욕할 권리는 인정될 수 없다. 나아가 그 누구에게라도 ‘모욕할 권리’가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모욕당할 의무’ 또한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게 그렇지”라는 한탄 속에 사용자의 부당한 행위들을 그저 지켜봐 왔다면, 이제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수단들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힘써서 옹호하지 않으면 지켜지기 어렵다. 근로자로서 나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발걸음을, 어렵고 어색하고 힘든 일이지만, 모두 함께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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