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는 수직적이다. 위에서 내리꽂으면 아래는 토조차 달지 못하는 군대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시가 부당하든, 정당하든 마찬가지다. 요새 이런 직장 갑질이 논란이다. 하위 직급자가 여성이라면 성적인 괴롭힘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샘이 그랬고, 성심병원 사례가 그랬다. 직장 갑질 문제 해법은 없을까.

지방노동관서 고용평등과 다시 설치해야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직장내 성희롱과 갑질문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서야 논란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곪고 곪은 것들이 이제야 터져 나온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조직문화가 직장에서 작동되며 약자인 여성노동자들에 폭력으로 가해지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직장내 성희롱이나 갑질문화를 해결할 수 없다. 가부장적인 조직문화를 해결하려는 노조의 노력이나 역량이 미진했던 것도 문제다.

직장내 성평등한 노사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와 사용자,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각 사업장에는 노사가 추천하는 명예고용평등감독관을 위촉해야 한다. 명예고용평등감독관은 사업장 차별과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 노동자에 대한 상담과 사업장 고용평등 시행상태 점검, 사업주에 대한 개선 건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명예고용평등감독관은 대부분 인사담당자가 담당하는 데다 여성은 배제돼 있다.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는 물론 노조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바꿔 나가야 한다.

직장내 성희롱과 갑질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지방고용노동청과 지청에 있던 고용평등과와 고용평등위원회를 재설치해 성평등 노사관계가 가능해지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성평등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근로감독관을 증원하고 현장에 배치해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정부 종합대책과 함께 일터혁명이 필요하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기획실장

재단과 병원의 고위관계자, 심지어 환자 앞에서까지 야한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한 성심병원의 갑질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후 조기출근 강요, 시간외수당 미지급, 환자유치행위 강요, 행사 동원, 정치후원금 강제, 임신순번제, 술 따르기 강요, 업무와 관계없는 잡무 강요 같은 다양한 직장 갑질 행태가 속속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병원 내 갑질문화는 성심병원만이 아니라 모든 병원에 만연해 있다.

성희롱과 직장갑질 근절은 일터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일터혁명 과제다. 노동존중 사회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직장 갑질 근절 종합대책을 세우고,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직장 갑질 유형별로 세부적이고 실효성 있는 근절대책을 세워야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16일 임금갑질·휴가갑질·노동갑질·모성갑질·성희롱갑질·폭력갑질·지시갑질·비품갑질·정치갑질·의료갑질 등 ‘병원 내 10대 갑질 근절 범국민운동’을 선포하고 2015년부터 진행해 온 ‘3대 존중(환자존중·직원존중·노동존중) 병원 만들기운동’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촛불혁명에 이은 직장민주주의혁명, 일터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


같은 직업·업종 직장인 뭉치는 것부터 시작하자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11월1일 시민·노동단체 소속 노무사와 변호사, 노동전문가 241명으로 구성된 ‘직장갑질119’가 출범했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겪는 갑질과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으로, '직장갑질 고발운동'과 '직장 바꾸기 운동'을 시작했다. 출범에 앞서 직장인 71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직장 갑질'을 당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메신저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직장인들의 갑질신고를 받고 있다. 출범하자마자 고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한림대 성심병원 직원들이 화상회의·체육대회·선정적 장기자랑 등을 제보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직장갑질119는 전태일 열사 분신 47주기를 맞아 10일 동안 접수된 591건의 갑질을 정리해 <21세기 시다들의 눈물> 보고서를 발간했다. 가장 많은 제보가 쏟아졌던 갑질은 '임금 미지급(19%)'이 1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내 괴롭힘(18.3%)' '노동시간(15.4%)' '휴가 미보장(11.7%)' 순으로 상담요청이 있었고, '일방적 인사 조처(8.5%)' '부당한 징계 및 해고(7.1%)' '성폭력 (3%)' 등의 상담도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고발 내용을 분류해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 인권유린은 국가인권위원회, 원청의 갑질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직장 갑질을 법적으로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같은 직업·업종에 있는 직장인들이 온라인(밴드)으로 모여 갑질 사례를 모으고,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회사와 정부에게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밴드로 뭉쳐 갑질을 고발하고 직장을 바꾸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 직장갑질119 운동의 첫출발이다.


피해자 중심 원칙 잊은 대책은 무용지물
한창규 금융노조 부위원장

한창규 금융노조 부위원장

'직장내 갑질' 문제에 대한 조직적인 해법을 모색할 때 두 가지 원칙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직장 폭력의 본질이 위계를 이용한 폭력이라는 점이다. 임금을 받아 삶을 이어 가는 노동자들에게 일터는 생존 그 자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일터에서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부당한 2차 가해로 돌아오는 우리 노동현실에서 이 두 가지 배경이 결합되면서 수많은 직장 폭력이 파묻히고 있다. 그 상처는 피해자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된다. 직장 폭력의 해법은 여기서부터 풀어 가야 한다.

지난 14일 정부가 발표한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의 한계도 여기서 비롯된다. 근로감독에 직장내 성희롱을 포함한다거나 과태료·벌칙을 강화한다는 등의 대책은 모두 핵심에서 비켜나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근본 원칙으로 하고 잠재적 피해자군인 노동자의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전제가 빠져 있다.

피해를 입거나 혹은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이들은 약자인 노동자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노동자들이다. 폭력이 발생했을 때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당사자 의견에 입각해 진행돼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사내 신고센터 설치는 물론 노사협의회 수준에서는 당사자 중심으로 실마리를 풀어 갈 수 없다. 최소한 노동조합, 더 나아가 피해자가 지정하는 전문가가 사태 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조 또한 직장 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되도록 스스로의 실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전 구성원 성희롱 근절대책 있다는 것 알아야 
김종철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

김종철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

최근 한샘이나 성심병원 같은 직장내 성희롱·갑질 사례들이 국민적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직장내 성희롱·갑질 문제를 양산하는 고질적이고 후진적인 직장문화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되면서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벌칙이 강화됐다. 공포 후 6개월 후 시행이다 보니 내년 5월에야 현장에 적용될 수 있다. 정부가 이달 14일 발표한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활용해 내년 5월 시행될 제도개선 내용이 사업장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행정지도하겠다는 취지다.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제재가 있다는 사실을 직장내 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도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법령과 정보를 일반 직장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했다.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양대 노총이나 경총 등 노사단체들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 다음달 초 스스로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판단력과 감수성을 점검할 수 있는 자가진단 도구를 앱으로 개발해 보급할 계획이다.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과 지식을 체크해 자신의 언행을 점검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노동단체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한국노동 운동이 남성위주이다 보니, 노동단체 내에서도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단체들도 여성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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