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11월13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예년보다 많은 동지들이 모였다. 양대 노총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열사의 오랜 친구들부터 국회의원까지. 모두가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산화를 추모했다. 초겨울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묘소 주위는 어느 때보다 온기로 가득했다. 헌화 후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었고 웃음꽃이 핀 곳도 있었다.

지난해보다는 다른 분위기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그래도 한숨은 돌리지 않았냐고 위로하는 듯했다. 지난해 추념식에서는 당시 정부 폐악을 성토하며 촛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는 결의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1년,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돌아보면 겨우내 광장 곳곳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밝혀졌다. 촛불혁명이라는 감격스런 이름도 얻었다.

일부 자축하면서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개선되지 않은 노동기본권, 건설노동자들의 고공농성, 공무원·선생님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투쟁은 아직 한참 멀었다고. 모두에게 따뜻해야 할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참으로 어려운 난제들이다. 어떻게 풀까. 무엇부터 해야 할까. 참으로 어렵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전태일 열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전태일 열사는 주변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재단사가 된 열사는 자신조차 끼니를 이어 가기 어려울 정도로 배고팠지만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았다. 열 서넛에 불과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시다)을 위해 풀빵을 나눴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고서 한 시간도 넘는 길을 걸어서 집의로 갔다고 한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깊은 측은지심. 요즘말로 한다면 연대정신, 노동연대가 아니겠는가.

우리 시대 ‘47년 전 평화시장 여성노동자들’은 사라졌을까. 열사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나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사라지지 않고 독버섯처럼 오히려 더 많이 퍼졌다는 평가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수익이 늘었지만 상대적인 노동조건 격차는 더 커졌다. 2천만 임금노동자 중 절반이 월 200만원을 벌지 못한다. 3분의 1은 100만원 남짓에 불과한 임금노동자다. 서울과 도시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한다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때는 없던 새로운 ‘평화시장 여성노동자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이주노동자가 아닐까. 며칠 전 태국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11년간 노동으로 살아가던 여성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보도됐다. 불법체류 신분으로 단속을 피하려다 오히려 남성 동료에게 살해당한 그녀는 고작 29세였다.

이들에게 보여지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47년 전 평화시장에서 열사와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사용하던 그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몇 배 더 심할 게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각종 제도 자체가 아예 위헌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라는 족쇄를 채워 인간 기본권 중의 기본인 이동의 자유를 빼앗는다. 불법체류를 이유로 한 강제추방 절차는 인권의 철저한 사각지대다. 과연 열사라면, 열사의 정신을 제대로 배운 우리나라였더라면 어땠을까.

수십 년 있어 왔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앞서도 예를 든 우리 시대 ‘평화시장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열사는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짧은 생각이 맺히는 곳이 있었다. 열사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효율적인 방법, 바로 조직화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열사는 조직화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바보회와 삼동회가 그랬다. 노동법이 작동하지 않던 시절,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아는 이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알렸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바보회를 만들었다. 당시 기준에 따르더라도 분명한 노동조합이다. 해고 후 막노동을 거쳐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온 열사의 활동 폭과 깊이는 더해 갔다. 삼동회를 만들어 노동청과 서울시에 평화시장 노동환경을 조사하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요즘 들어 부쩍이나 “촛불혁명 이후 요즘이 가장 중요하다”라고들 한다. 이러한 때가 또 오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짧은 시간 어렵고도 힘든 많은 문제를 풀어 내야 하겠지만, 그래도 바라건대 전태일 열사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 열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