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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의 나라에서 노동자가 ‘세력화’하려면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한동안 정치권이 시끄러웠다. 홍 후보자 가족이 월 1천만원이 넘는 부동산 임대소득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적격성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이다. 특히 그의 딸이 여러 점에서 문제가 됐다. 홍 후보자의 중학생 딸은 8억원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월 400만원의 임대료를 받으며 특권층 자녀들의 학교인 국제중에 다니고 있었다.

부동산 증여와 투기 그리고 학벌과 인맥을 통한 지위 상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대 추구적 행위들이다. 지대 추구는 능력과 노력으로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소유권·시장독점력·통제된 정보·정경유착 등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지대 추구적 행위가 증가할수록 경제활동 참여자들이 능력을 키우고 노력을 더하려는 유인은 당연히 줄어든다. 그런데 도전과 혁신, 경제민주화 같은 가치를 실현해야 할 중소벤처기업부 수장이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지대를 추구하도록 했다니,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 방향 중 하나로 ‘노동존중’을 내걸었다. 하지만 홍 후보자의 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구조는 노동존중과 아주 거리가 멀다. 노동존중 사회가 능력을 발휘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은 사회를 지칭하는 데 반해 지대 추구적 사회는 노동으로 만든 부를 부동산을 소유한 자, 시장을 독점한 자, 정보를 가진 자, 정부와 유착한 자가 가져가는 사회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지대 추구가 지배적인 경제다. 새 정부하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노동존중 사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간단하다. 대표적인 지대 추구적 행위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면 된다. 모호하게 노동을 존중한다고 도덕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낫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첫째, 부동산. 인구밀도가 높고 생산과 소비가 도시로 집중되는 나라에서 부동산의 희소성 가치는 경제성장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경제성장률이 하락해도 부동산 희소성은 하락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동산 소유자가 가져가는 몫이 경제 전체에서 더 커질 수 있다. 저성장이 고착화할수록 건물주의 경제적 권력은 더 강화될 수 있다. 부동산 소유를 과감하게 사회화해야 한다.

둘째, 재벌. 혁신을 통해 부를 쌓은 수출 대기업도 있지만 재벌 다수는 정경유착으로 얻은 시장독점력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정경유착으로 민영화된 국영기업을 인수하며 수십 년째 시장을 독점해 돈을 번 정유재벌들과 통신재벌들, 정부 토목건설 사업을 독점한 건설재벌들, 목 좋은 곳에 자본을 밀어 넣어 시장지배력을 키운 대형마트나 백화점 재벌들이 다 그렇다. 이들은 혁신이라 할 것 없이 오직 지대 추구적 돈벌이로 부를 쌓아 올렸다. 이들의 부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셋째, 직업. 노동시장 분단이 고착화하며, 고용과 임금이 보장되는 직업이 희소한 ‘재산’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교사 직업의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간제 교사와 강사가 정규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공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면 희소성 가치가 떨어진다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요구를 재산권 침해처럼 여기며 반대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누구에게 고용되는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가로 대우받고, 어떤 일을 하던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동권을 강화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꿈 1위와 2위가 건물주와 공무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토지와 직업이 지대를 추구하는 재산이 된 셈인데, 이미 청소년들부터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으로 무엇을 얻을 지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하는 시민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은 패자의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같은 노동운동 전략은 그야말로 성립조차 불가능한 것이 된다. 좁은 의미의 의회진출 프로그램은 가당치도 않다. ‘노동자’를 앞세운 정치는 보편적일 수 없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노동자·시민의 지대 추구 경제에 대한 개혁 프로그램이다. 부동산 같은 희소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공유재로 만들고, 재산소득에 과감하게 과세하며, 독점적 지위로 인한 소득을 촘촘하게 규제해야 한다. 노조할 권리를 통해 노동하는 시민의 집단적 힘을 키우고, 노동하는 시민의 대안을 보다 보편화시켜야 한다.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진행 중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에서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이번에도 진보정당들의 연대·통합,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프로그램 같은 전통적 전략이 이야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했듯 건물주의 나라에서 노동자가 ‘세력’을 만들기는 어렵다. 건물주 위에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이 민주노총에게는 시급해 보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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