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10.27. 선고 2016나6950 판결

 

김차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1. 사건의 개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해 금속노조 유성지회(아산지회·영동지회)가 2011년 1월부터 특별교섭을 요구하자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공모해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시켰다. 유성지회가 2011년 5월18일 파업을 결의하자 유성기업은 같은날 아산공장에서, 같은달 23일 영동공장에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2011년 7월1일부터 법률상 사업장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됨에 따라 유성기업은 회사에 우호적인 어용노조를 설립하고 그 노동조합을 육성해 교섭대표노조가 되게 함으로써 유성지회를 무력화하고자 했다. 유성기업이 직장폐쇄를 위법하게 유지하는 상황에서 제2노조인 유성기업노조가 만들어졌는데, 유성기업은 제2노조의 규약·노조설립신고서·창립총회 의사록 등을 작성해 주는 등 제2노조 설립에 개입했다. 제2노조를 과반수노조(교섭대표노조)로 만들기 위해 유성기업은 부서장과 관리직원들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했고, 부서장과 관리직원들은 유성지회 조합원들을 개별 접촉해 유성지회를 탈퇴하고 제2노조에 가입하라고 종용했다. 2012년 임금·단체교섭을 앞두고 위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제2노조가 과반수 조합원 확보에 실패하자 유성기업은 2012년 1월 관리직 직원 49명을 제2노조에 가입시켜, 제2노조가 2012년 임단협에서 교섭대표노조(과반수노조)가 되게 했다.

금속노조는 2013년 1월3일 서울중앙지법에 제2노조 설립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4월14일 제2노조 설립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제2노조가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고(유성기업은 제2노조를 위해 보조참가했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27일 제2노조의 항소를 기각한 것이다.

2. 판결의 요지

가. 제2노조와 유성기업의 본안전 항변을 배척했다.

제2노조와 유성기업은 이 사건 소가 부적법하므로 각하돼야 한다고 시종일관 매우 강하게 주장했다. 이 사건 소가 노동조합의 ‘설립’이라는 불분명한 과거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행정법원에 노조설립신고증 교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뿐 민사소송으로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으며, 이 사건 소는 형성의 소인데 관계법령에 이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고, 이 사건 소가 현존하는 불안의 제거에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상판결은, 제2노조 설립은 유성기업의 교섭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등 그 설립 이후 현재까지 금속노조의 지위와 권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한 노동조합 ‘설립’은 노동조합 구성과 조직, 신고와 신고증 교부 등 새로운 단체의 형성과정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소송 확인의 대상이 불분명하다고 볼 수 없고,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장을 상대로 설립신고증 교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민사소송으로 설립무효의 확인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 사건 소송 결과 금속노조 청구가 받아들여져 제2노조가 회사와 체결한 임금·단체협약 등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이는 처음부터 당연무효인 법률관계에 따른 효과일 뿐 이 사건 판결에 따라 비로소 위 법률관계의 변동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 소를 형성의 소라고 볼 수 없고, 제2노조의 설립이 무효가 될 경우 유성기업과의 관계에서 금속노조의 법률상 지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소는 금속노조의 법률상 지위에 대해 현존하는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이 돼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 제2노조는 그 설립과 운영에서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그 설립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취지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조직한 단체임을 요하고 그 목적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에 있어야 하는 점, 피고보조참가인(유성기업)은 원고 노조(금속노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창조컨설팅 자문 등을 통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됐던 점, 피고 보조참가인은 창조컨설팅과 피고(제2노조)의 설립 과정 전반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논의했고, 특히 피고의 설립신고서·규약·회의록 등 노동조합의 설립 취지 등이 담긴 핵심적인 요소들에도 개입했던 점, 실제로 피고는 피고보조참가인의 사전 계획에 따라 설립되고 운영됐던 점 등을 근거로 “금속노조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성기업의 치밀한 기획 하에 설립·운영된 제2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것이어서 제2노조의 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다. 제2노조와 유성기업의 예비적 주장을 배척했다.

제2노조와 유성기업은, 설령 제2노조가 설립에 있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특정 시점부터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춰 설립의 하자가 치유됐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이 제2노조 설립 이후에도 직원들에게 제2노조 가입을 독려해 제2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했다는 사실, 제2노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는 매우 구체적으로 이뤄졌고 실제로 유성기업 계획대로 상집간부 회의·노보 창간·홈페이지 오픈·노동조합 현판식·간부 교육·조합원 체육대회 등이 순차 진행된 사실, 유성기업 임직원들이 유성지회 조합원에게 제2노조에 가입하라고 종용한 사실, 제2노조가 그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조합원수를 늘리면서 상당 기간 활동했으나 유성기업의 개입 또는 원조가 사라진 이후 조합원수가 줄어들면서 현재는 소속 조합원이 20여명에 불과한 사실 등을 종합해 제2노조가 유성기업의 개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설립의 하자가 치유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3. 판결의 의의 및 평가

유성기업이 제2노조를 설립해 과반수노조로 육성하는 등 노조파괴 행위(각종 부당노동행위)를 통해 금속노조 유성지회를 와해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수차례 이미 확인됐다. 대전지법은 유성기업 임직원들의 노조파괴 행위(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며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했다(대전지방법원 2017.8.16. 선고 2017노663 판결). 제2노조 육성 등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한 현대자동차와 그 임직원들은 올해 5월19일 기소돼 현재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2017고단1027호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대상판결은 제2노조가 유성지회를 무력화하려는 유성기업 의도에 따라 설립·운영됐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한편 대상판결은 이 사건 소송이 형성의 소가 아니라 확인의 소이고, 행정소송(설립신고증 교부처분 취소 소송)과 별도로 자주성 없는 노동조합의 설립이 무효임의 확인을 구하는 민사소송이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대상판결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제2노조가 유성기업의 개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설립의 하자가 치유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시했는바, 제2노조가 설립 이후에도 유성기업에 대한 자주성과 독립성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본 판단 자체는 정당하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볼 때 설립에 있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 특정 시점부터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춰 설립의 하자가 치유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이 부분 판시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사용자의 적극적인 지배·개입으로 제2노조가 설립되는 경우 노사관계의 안정화, 기존 노동조합의 단결권 침해 등의 관점에서 일반적인 사적인 거래와 달리 그 하자가 치유될 수 없다는 점에 관해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독립성에 대한 해석-서울중앙지법 2016.4.14. 선고 2013가합367 판결을 중심으로> (송강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참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