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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감시 세상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2일 노동자대회가 있었다.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개최한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전태일 열사 47주기를 맞았다. 당시와 지금은 시간과 공간도 다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노동자들은 노동의 권리, 노동기본권을 수만의 소리로 외쳤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법 전면개정에 나서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해마다 전태일 열사 기일에 즈음해 열리는 노동자대회는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와 노동의 요구를 외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광장에서였다. 작업장이 아닌 광장에서, 사용자 자본의 감시에서 벗어나서였다. 겨우내 촛불시민으로 박근혜 정권 심판을 외쳤던 그 광장에서였다. 이 나라에서 노동감시가 없는 광장이기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12일은 일요일이라서 노동자들은 사용자 감시를 받지 않고 맘껏 외쳤다.

2. 자유·기본권·천부의 인권이라고 말해 왔다. 인간은 모두가 빼앗길 수 없는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선언하고서 이 세상은 열렸다. 권리장전·독립선언·시민 인권선언, 그리고 나라마다 선포한 헌법전들은 근거 없이 이렇게 선언하고서 권력의 지배원리, 세상의 질서를 세워 왔다. 이런 인간이 언제부터 감시받게 된 것인가. 국가 권력의 감시는 일단 제쳐 두고서 보자.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요구하고 외쳤던 노조할 권리 등 노동기본권은 사용자 자본으로부터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것이다.

법은 근로계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근로계약 체결을 통해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복종하는 ‘근로자’로 되는 것이라고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 ‘근로자’ ‘사용자’를 정의하고서 그 질서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보자면 자유와 천부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근로계약으로 자유 없는 근로자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시간은 노동자 자유시간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해 근로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법은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근로시간은 노동자에게는 사용자에 복종하는 시간이고, 근로계약관계는 사용종속의 성격을 가진다고 법원은 판결해 왔다. 본래 자신의 것인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으로 사용자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근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의 감시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휴일이 아닌 날에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노동감시 없이 ‘근로’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광장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와 노동기본권을 외친다. 작업장에서 ‘근로’하면서 이를 외친다는 것은 아무리 노조할 권리를 쟁취해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이라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노동자들은 작업장이 아닌 광장에서야 사용자의 노동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근로시간은 사용자를 위해 복종하는 시간이니 작업장에서 노동감시는 필연이라고 받아들였다. 노동자는 작업장 노동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해방을 쟁취해야 한다고 여겼다. 점점 더 광범위하고 치밀하며 체계적으로 행해져 왔다. 관리자에 의한 감독이 전자장비에 의한 감시로, 작업 결과에 대한 감시가 작업 행태 등 작업장에서 노동자 행동 전반에 대한 감시로 나날이 확대돼 왔다. CCTV 등 각종 전자장비에 의한 작업장 감시는 노동자의 전인격을 낱낱이 촬영하고 저장하는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이제 작업장에서 사용자로부터 자유로운 인격권을 보장받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지경이다.

3. 자신의 것에 대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소외는, 생각해 보면 노동의 생산물을 두고서 말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자로서 사용자에 의해 생산수단과 결합되고, 일해서 생산한 상품이 노동자의 것이 되지 못하고, 그 가치의 실현이 다시 근로자로서 사용자 자본의 복종을 하게 되는 자본의 생산 과정을 살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작업장에서 근로자로서 감시받는다는 것에 관해서 보다 주목해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사용자 자본의 사업장에서 근로자로서 수행하는 ‘근로’는 사용자의 노동감시로 노동자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노동으로 행해지고 있다. 사용자의 노동감시가 확대, 심화되면 될수록 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에서 멀어진다. 노동자는 자신에 대한 감시를 의식하면서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을 제3자, 사용자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노동자 근로는 제3자의 것인 양 스스로를 객체로 대상화해서 사물화한다. 단순히 사용자가 설정한 작업장 질서에 복종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신을 상실하는 데로 나아간다. 복종은 노동자 인격에 내면화되고 종국에는 사용자의 감시의 눈으로 작업장,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사용자의 감시는 더는 감시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고, 노동자의 인격은 점점 사용자의 것에 동기화된다. 그러나 계약자유의 세상에서 근로계약은 노동자 인격을 빼앗는 계약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세상 어느 법전에도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은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계약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2조). 사용자와 독립된 인격체로서 노동자를 당연한 전제로 하는 계약인 것이다. 근로계약이 정한 근로를 제공하는 데 사용자의 관심이 있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데 노동자의 관심이 있는 계약인 것이다. 생산물이든 용역서비스이든 계약이 정한 근로를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태도와 행태 등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관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작업장에서 노동감시는 점점 후자에 관심을 두고서 행해지고 있다. 설사 전자에 관심을 두고 행한다는 감시라도 CCTV 등에 의한 감시장비를 통한 감시는 후자까지 전면적으로 노동감시가 행해지고, 그 감시를 받는 노동자는 자신의 태도와 행태까지도 스스로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사용자가 성실성 등 근로자 평가자료를 보수와 인사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노동자로서 태도와 행태는 사용자가 바라는 태도와 행태로 되고 이제 독립된 인격으로서 노동자는 없다.

4. 그러니 작업장에서 노동감시는 제한돼야 마땅하다. 사용자의 노동감시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세상에서 근로계약은 법적으로는 동등한 인격체인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사용자 자본이 노동자를 압도하는 힘을 갖고 있어 결코 동등하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선언하고서 근로계약은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계약의 체결뿐만 아니라 그것이 유지되는 근로계약관계에서도 노동자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인격권은 그 본질적인 부분은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기본권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선언하고 있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이 점을 부정하고서는 이 세상은, 이 나라는 존재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인격을 가지고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CCTV 등에 의한 작업장에서의 노동감시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노동자를 부정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 처리를 제한하고 있지만, 작업장에서 노동자 감시에 관해서 보다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법 15조에 따라 사용자는 노동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있고, 법 25조에 따라 법령, 범죄의 예방, 시설안전 및 화재예방 등을 위해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설치·운영할 수가 있으니 CCTV 등 감시장비를 통해 노동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심지어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에서 전면적으로 CCTV 설치를 의무화해 보육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촬영하고 저장하고 보호자 등이 열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어디 이뿐일까. 오늘 이 나라에서 작업장에서 노동감시는 교도소 죄수에 대한 감시와 얼마나 다른가. 이 지경인데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감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은 어디에도 없다. 개인정보 보호법도, 영유아보육법도 노동감시로부터 노동자의 보호에 관해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법에서도 사용자의 노동감시를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의 작업장은 아무렇지 않게 노동자의 인격권을 짓밟고서 사용자의 노동감시가 행해지는 감옥이 되고 있다. 겨우내 촛불집회를 지나서 오늘 서울의 광장에서 노동자들은 노조할 권리 등 노동기본권을 외치면서 작업장에서 촛불을 말하고 있다.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가 작업장에서도 외쳐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업장 민주주의는 노조할 권리가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더라도 너무도 멀리 있는 말이다. 작업장에서 사용자의 노동감시는 노조할 권리 보장도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시키고 만다는 것은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탄압 사례가 말해 주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47주기를 맞은" 오늘도, "당시와 지금은 시간과 공간도 다르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감시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CCTV 등 전자장치에 따른 감시장비 고도화로 노동자의 전인격까지도 송두리째 감시받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작업장에서 노동감시에 대한 노동의 감시를 노동자 권리로 쟁취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외쳐 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감시받는 자는 주인일 수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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