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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에 제조4.0을 제안한다
   
▲ 한석호 노동운동가

엄밀하게 말하면 문재인 정부에게 보내는 제안이다. 또한 ‘양대노총 제조연대’를 꾸리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화학섬유연맹, 한국노총 금속노련·화학노련 그리고 제조업 사용자단체들에게 보내는 제안이다. 물론 다른 산업 노사도 검토할 수 있는 제안이다.

한국 제조업에 미래는 있는가, 제조업 일자리 전망과 노동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우려한다. 학자뿐 아니라 일선에서 뛰고 있는 경영진과 현장 노조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면서 노·사·정은 불신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산업 발전에 뜻이 없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러지 말고 함께 판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 제조산업의 현재 상태와 미래 전망을 노·사·정이 함께 분석하고 예측하면서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 측면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제조업 최강국 독일이다. 독일 제조업은 일자리 양과 질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준비하는 독일 산업4.0에서 제조4.0을 따왔다. 제조4.0은 첫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한국 노·사·정 관계에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산업정책은 노·사·정 모두에게 중대한 문제다. 일자리 숫자와 직결되고 질과도 연결되는 노동자 생존 문제다. 노동운동이 비켜 갈 수 없는 사안이다. 기업 존속·성장과도 직결된다. 국가 경제 사활이 걸린 문제고, 사회·정치·문화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다.

그러한 성격의 산업정책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정부·재벌이 일방적으로 끌어오며 주도했다. 노동조합은 산업정책에서 배제당했다. 노·사·정 간의 불신이 작동했다. 노동운동은 산업정책에 힘을 쏟지 않았다. 스스로 배제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정부와 자본을 배제하겠다는 노동운동의 오랜 노선이 배경이었다. 재벌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마음 놓고 극단의 양극화 사회를 만들었다. 노동자는 10%의 중심부와 90%의 주변부로 분단됐다. 오로지 나뿐인 나쁜 세상이 만들어졌다. 역대 정부가 동조했고, 5년 임기 채우기에 급급했다. 빚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노동운동은 투쟁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노동운동 중심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처우개선을 반대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는데도, 우물쭈물하고 있다. 정부만으로도, 재벌만으로도, 노동운동만으로도 답은 없다. 정책에 개입하면서 제도로 풀지 않고서는 답이 없는 문제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실마리는 될 수 있다. 경제와 일자리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지난 9월 양대 노총 제조연대는 김종훈 민중당 의원을 통해 '제조업발전특별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제조산업 발전 전략과 정책 수립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4차 산업혁명시대 제조업의 위기 극복과 고용 창출을 위한 제조업 발전기금 조성, 구조조정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 구성, 외국인투자기업의 투기행태 규제 장치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다.

노동조합운동이 산업 발전을 자기 소임으로 떠안겠다는 획기적 선언이었다. 의미를 살려야 했다. 그런데 흐지부지된 상태다. 법으로 발의한 것이 약점이었다. 여소야대 엉망진창 국회를 통해서는 법안 통과가 난망하다.

제조4.0은 굳이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정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추진해 줄 것을 제안한다.

제조4.0 제안 이유가 또 있다. 금속노조 등이 추진하는 산별교섭의 예비단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금속노조 중앙교섭에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들어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당분간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산별교섭 법제화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것도 국회 장벽을 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제조4.0은 우회로가 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들어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합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판이기에 거부할 명분이 없다. 제조4.0은 노·사·정이 각각의 상태와 어려움을 얘기하며 서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이기에, 산별교섭 예비 단계로서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안 이유가 더 있다. 사회적 교섭을 위한 신뢰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재편되는, 그렇다, 노사정위 재편은 전제조건이다. 그것이 없으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가 여부를 논의조차 할 수 없다. 아무튼 노사정위가 재편되면 민주노총은 참가 논의를 할 텐데, 논란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민주노총의 기존 방침이 충족되고 있는가도 논란 지점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정-산별-노사정 중층교섭을 기본방침으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노정교섭 및 산별교섭을 통해 신뢰를 확인하면서 노사정 교섭으로 가자는 기류였다. 제조4.0은 그 기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참가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는 노사정위를 보완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그래서다. 제조4.0을 정부와 노조와 사용자단체에 제안한다. 진지한 검토를 기대한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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