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전태일재단 풀빵나눔 사회활동가 지원금 전달식에서 이수호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와 지원을 받게 된 활동가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기훈 기자
"우선 조합원들하고 고기를 한판 구워 볼까 생각 중입니다."

전태일재단(이사장 이수호) '풀빵나눔 사회활동가 지원금'을 받은 박정훈씨가 환하게 웃었다. 맥도날드 딜리버리 라이더인 그는 최저임금 노동자다. 알바를 하는데 알바만으론 먹고살기 힘들다.

올해 초까지 알바노조 위원장이었던 박정훈씨는 현재 서울 마포구 맥도날드 합정점에서 알바와 노조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박봉인 탓에 조합원들과 삼겹살 한판 마음 놓고 구워 본 적이 없어 늘 아쉬웠단다. 풀빵나눔 사회활동가 지원금 100만원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박씨는 이참에 평소 하고 싶었던 운동인 주짓수 학원도 등록할 생각이다. "학원비가 비싸 얼마 안 가 (지원금이) 눈 녹듯 사라지겠지만, 해 보고 싶었던 걸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네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2회 풀빵나눔 사회활동가 지원금 전달식이 열렸다. 사회활동가 지원사업은 전태일 열사가 차비를 아껴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줬던 마음을 이어받아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풀빵나눔 프로그램 중 하나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사회공헌기금 2천만원을 쾌척했다.

재단은 올해 가구소득이 중위소득 80% 미만인 사회활동가들에게 신청서를 받아 심사를 했다. 20명을 선정해 100만원씩 지급했다. 사업 첫해인 지난해에는 19명을 지원했다. 박계현 사무총장은 "올해는 학습지·택배·해고자 등 장기투쟁을 하거나 숨은 곳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많이 신청했다"며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지만 한정된 금액으로 하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 열사의 풀빵나눔 정신을 잇고자 매년 얼마 안되지만 나누고 있다"며 "힘들수록 서로 도와 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금이 생활에) 크게 도움은 안 되겠지만 이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따뜻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전태일 열사 얼굴이 담긴 지원금 증서와 전태일 평전을 받은 노동자들의 얼굴에 쑥스러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저마다 지원금을 어떻게 쓸지 즐거운 상상을 하는 모습이었다.

비영리 환경문화예술단체 그린풀 하모니 활동가 박선하씨는 "올해 3월 다니던 환경단체를 그만두고 그린풀 하모니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많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재단이 '많이 못 도와줘 미안하다'고 하는데 사실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재단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활동가 박미순씨는 대학 졸업 후 사람을 부리는 것 같은 기업체가 싫어 사회단체를 선택했다. 원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생활은 팍팍하다. 그래서인지 박씨는 "지원금으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100만원이 아주 큰 돈은 아니지만 부족한 돈도 아니다"며 "노트북을 사서 컴퓨터 그래픽이나 웹디자인을 공부해 홍보기획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인 윤충렬씨는 아직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136명 중 한 명이다. 재단에서 사회활동가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끝에 지원했다. 앞서 복직한 동료들이 십시일반 미복직자들의 생활비를 보태 주고 있어 신청을 고민했다고 한다. 쑥스러워하는 윤씨 옆에서 이수호 이사장이 "대부분 지원금을 신청하면서 '나보다 어려운 동지들이 많을 텐데'라고 말씀하신다"며 "다들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크다"고 귀띔했다.

지원금을 어디에 쓸지 생각지 못했다던 윤씨는 곧 "고생하는 집사람에게 빨래건조기를 사 주고 싶다"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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