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계와 재계의 오랜 숙원인 노동시간단축과 최저임금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한마디씩 거들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특히 홍영표 환노위원장은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 반대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노동시간단축 단계적 추진 입장을 내놓아 논란을 증폭시켰다.

김만재(52·사진) 금속노련 위원장은 홍 위원장 발언을 반박하며 “노동법 후퇴 발언”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에 대해 “다수 고등법원에서 인정 판결을 받았다”며 “중복할증 반대는 결국 사용자 비용 부담만 낮추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시간단축 단계적 시행 주장에 대해서도 “주 40시간 노동을 산업·사업체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며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10년 이상 차별당했다”며 “(시행을) 유예하더라도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제도 개편·노동시간단축 논의와 더불어 중요한 현안으로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꼽았다. 올해 1월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8천곳을 대상으로 납품거래 과정에서의 애로사항(복수응답)을 조사했더니 50.3%가 “원자재가격이 상승해도 거래기업이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아 힘들다”고 답했다. 49.7%는 “납품단가 인하”를 지목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고 원·하청이 이익을 나누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조업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손보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공정거래위에 “문재인 정부의 ‘공정한 사회로의 전진’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정치권 무책임에 장시간 노동 유지”

- 재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각종 상여금을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려는 발상이다. 원·하청 불공정거래가 만연한 제조업에서 중소기업은 단가 후려치기 탓에 최저임금 인상률도 맞추기 어렵다. 자동차 부품업체나 철강산업의 수많은 협력업체가 단가 후려치기와 원청의 일방적인 임금률 조정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저임금 문제는 노동시간단축과 통상임금,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단지 최저임금을 올리고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생활안정이라는 최저임금제도 근본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데.

“2004년부터 주 40시간 노동이 산업·사업체 규모별로 시차를 두고 시행됐다. 시행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장시간 노동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부 행정해석으로 주 68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대응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해석만 폐기하면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법 개정으로 가야 한다.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주야 2조2교대제를 바꿔야 한다. 교대제 전환을 통해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드라마 <송곳>이 바로 현실”

- 홍영표 환노위원장이 노동시간단축 단계적 시행과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 반대 입장을 밝혔다.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은 다수 고등법원에서 인정 판결을 받은 사안이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 중이다.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노동법 후퇴적 발언이다. 중복할증을 없애겠다는 것은 결국 사용자 비용 부담만 낮추겠다는 얘기 아닌가. 노동시간단축 단계적 시행 발언도 문제다. 앞서 지적했듯이 '단계별 시행'이라는 정치적 합의로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10년 이상 차별을 당했다. 노동시간단축은 차별 없이 적용해야 한다. 차라리 유예를 하더라도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외국인 투자기업 문제 해결을 약속했는데.

“드라마 <송곳>을 보면 노동상담소 소장이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느냐?'는 노동자 물음에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깐’이라고 답한다. 현실 그대로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본을 유치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노동조건은 어떤지 관심이 없다. 기술 유출과 구조조정을 통한 대량해고가 반복되는데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외국자본이 5년 이내에 국민 고용안정과 생명안전에 위해를 초래할 경우 조세감면 지원을 중단하고 지원금액을 환수해야 한다.”

“업종별 대화기구 구성해 노사정·노정 대화 서둘러야”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이후 원·하청 불공정거래 문제 해결 기대감이 높아진 것 같다.

“원·하청 관계는 말 그대로 갑을관계다. 단가 후려치기로 대표되는 불공정거래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고 이익을 나누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기업 갑질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불공정거래의 핵심인 제조업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미스터피자나 파리바게뜨 같은 프랜차이즈만 문제 삼고 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손보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단축 모두 허상이다. 공정거래위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한 사회로의 전진'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뿌리 뽑아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으로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대안은 무엇인가.

“기술 발전이나 그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책 방향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기존 일자리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발생할 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도 없다. 독일은 산업별로 노동계와 정부가 대화체를 구성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논의 중이다. 한국은 어떤가.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노동계는 배제돼 있다. 업종별위원회를 꾸려 노동계와 일자리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 현시점에서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해체와 실천이 담보되는 검증시스템을 제안했는데.

“노사정위는 20년 가까이 운영되면서도 합의이행 점검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합의'라는 퍼포먼스에만 집중했다. 현재 노동계 양대 축인 민주노총이 불참하는 상황에서 한국노총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대 노총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사정위를 개편해야 한다. 명칭만 바꾼다고 개편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구성부터 바꿔야 한다. 공익위원이 정말 균형 있는 전문가인가. 정권 눈치를 보며 정권 입맛대로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다. 공익위원 추천권을 노사가 공동으로 가져야 한다. 나아가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 회의 성사나 양대 노총 노사정위 복귀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업종별 대화기구를 구성해 노사정·노정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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