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어제 오늘, 언론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 눈길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느 때보다 취재 열기가 뜨겁다. 돌발적인 발언으로 국제정세를 뒤흔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으니, 모두가 촉각을 세우고 트럼프 대통령의 눈과 입을 좇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민들과 단체들도 당연히 트럼프·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어제와 오늘 청와대 인근과 광화문광장에는 모두 76건의 집회신고가 있었다. 그런데 경찰당국은 11월 초부터 ‘교통소통의 장애’와 ‘경호상 위해 등’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선별적으로’ ‘미리’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언급한 보도에 따르면 경찰당국은 76건의 집회신고 중 26건에 대해 금지·제한 처분을 했다고 한다.

전면 금지된 집회 중에는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가 신고한 청와대 100미터 사랑채 부근 집회도 포함돼 있었다. 공투위는 대규모 정리해고, 각종 비정규직 문제, 노동조합 탄압이 있는 여러 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뭉쳐 투쟁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다. 공투위는 지난여름 뜨거운 더위를 이겨 가며 청와대 인근에서 더위보다 더 뜨겁게 집회·시위를 진행했다. 10월 중순부터 다시 투쟁의 열기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런데 경찰당국이 집회금지 처분을 함으로써 투쟁의 열기가 온전히 이어지지 못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라는 중요행사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회·시위에 대한 선별적·사전적 금지·제한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권력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하려면, 법률상 정당한 근거하에 최소한의 제한을 발생시키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찰당국은 무슨 근거로 특정 집회는 금지·제한하고, 특정 집회는 허용했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권력 행사는 헌법상 평등원칙에도 위반됨이 분명하다. 다행히 지난 월요일 법원은 공투위의 ‘집회금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민주주의에서 집회·시위 자유가 갖는 중요성과 우리 사회에서 청와대 100미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고려할 때, 당연히 이르러야 할 결론이고 마땅히 환영받아야 할 결정이다. 법원의 주요 결정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와대 100미터 사랑채 인근 도로(효자로)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교통소통의 필요성을 위해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애초에 청와대 100미터 효자로는 교통소통을 이유로는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없는 곳이다.

둘째, 청와대 100미터에 대해 집시법에 따라 교통소통 장애를 이유로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당국은 공투위 집회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도로 통행에 어떠한 장애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경찰당국이 주장하는 ‘경호상 위해’가 교통소통 장애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셋째,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집시법은 그 어디에서도 ‘경호상 필요’를 집회·시위 제한사유로 정하고 있지 않다.

넷째, 경찰당국이 주장하는 ‘대통령 경호’라는 공공복리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에 따른 안전활동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므로, 공투위가 집회를 개최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다.

그런데 경찰당국은 결정의 전체적 취지는 무시한 채 오로지 네 번째 근거에만 주목해 청와대 일대를 모두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집회·시위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의 통행까지 제한하겠다는 심산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경찰당국이 집회·시위를 항의대상자에 대한 물리적 위협, 신체에 대한 위험과 동일시하는 구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맞이해 경호업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 자유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침해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경찰당국은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경호업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고, 강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경찰당국이 그와 같은 방안은 강구하지 않은 채 집회·시위 자체를 선별적·사전적으로 제한·금지한 것은, 사실상 경호업무를 핑계로 항의 대상으로부터 집회·시위를 분리시키고자 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겨울 청와대 100미터에 보다 가까이 전진하는 만큼 국정농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고, 청와대 100미터가 집회·시위 장소가 되는 만큼 민주주의도 바로 설 것이라고 믿었다. 정권이 바뀐 지금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촛불민심을 받들겠다고 천명한 만큼 적어도 청와대 100미터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후퇴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당국의 선별적·사전적 집회금지·제한 처분은 단순히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러한 믿음이 쉽게 유지될 수 없음을 분명히 일깨워 줬다. 결국 청와대 100미터의 정치적 의미를 있는 그대로 지켜 나가야 할 주체는 문재인 정부도, 경찰당국도 아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비롯해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평범한 시민들, 우리 집회 참가자들만이 청와대 100미터의 의미를 지켜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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