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균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얼마 전 자문노조 집행부와의 술자리에서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웃으며 “노동법”이라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질문자는 깜짝 놀라더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일치하는 축복받은 경우”라고 얘기했다.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동법이 취미라고 해서 지금 하고 있는 노무사 일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수습 시절 선배 노무사가 읽어 보라며 두꺼운 산업재해 소송 기록을 건네줬다. 어느 연구원 과로사 사건이었다. 수백 장의 두꺼운 기록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원고의 주소였다. 원고는 사망한 노동자의 배우자였다. 3년여의 소송기간 동안 사망한 노동자의 배우자 주소는 신도시 아파트에서, 구시가지 빌라 반지하로 바뀌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이 이사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됐다. 소송기록 속 공방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수습을 마치고 단독으로 맡게 된 첫 사건은 해고 사건이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기각 판정을 받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지노위 판정 직후 그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를 나눴는데,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집 근처에 치킨가게를 하기 좋은 자리를 봤는데, 잠깐 여행 갔다 온 사이 치킨가게가 들어섰다며 아깝다는 얘기, 지역 동년배 모임에 가입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 거기서 만난 형님네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밝게 살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입찰 결과에 따라 해당 사업장 노동자 전적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회사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단체협약상 학자금 지원을 이유로 전적을 거부했다가 대기발령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대기발령 특성상 구제신청을 한 사이에 발령을 내서 일단 구제신청은 각하되도록 만들고 사실상 출근이 불가능한 원격지로 보내 퇴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라는 예상으로 노동자는 불안해했다. 그 걱정이 전달되는 상대방은 언제나 나였다. 그 과정에서 군대를 막 다녀온 아들이 있다는 사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알게 됐다. 예상한 대로 구제신청 진행 중 출근시간이 두 시간 정도인 지역으로 발령이 났고, 다행히 결과는 부당대기발령 인정이었다. 승전보를 알리는 전화에서도 노동자는 ‘현 발령지를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가까운 곳으로 발령이 날 수 있는지’ 여전히 걱정할 뿐이었다. 판정 이후 발령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당사자가 퇴사를 각오하고 사장과 면담을 하겠다고 요구한 이후에서야 가까운 곳으로 발령 났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판결문·판정문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사건을 진행하면서 보게 되기 마련이고, 여전히 나는 보이는 사실에 휘둘리고 감정이 소모된다. 수습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처음 산재 기록 속 원고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선배 노무사에게 물었다. 남편 사망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 일이 적성에 맞아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끔씩 사건을 함께했던 당사자들의 사건 이후 삶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들의 변화된 삶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용기가 내게는 없다. 그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뒤적여 보며, 잘 지내고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다. 여전히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동법이라 답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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