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요즘 국가정보원 문제가 시사 초점이 되고 있다. 올해 6월 국정원은 개혁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산하에 적폐청산TF를 만들어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7월 국정원 적폐청산TF와 관련해 “13가지 사건의 사실관계를 조사해 진실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장 시선을 집중시킨 사건은 역시 국정원 심리전단에서 조직적으로 댓글부대, 즉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하며 18대 대선에 개입한 댓글공작 사건이었다. 심리전단에서 전직 국정원 직원을 비롯해 대학교수·언론인 등 각양각색 민간인들을 팀장으로 세우고, 대포폰을 사용하며 점조직 형태로 운영하면서 댓글을 달게 하고, 그 대가로 활동비를 지급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로 댓글공작을 지휘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8월30일 구속됐다.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18대 대선은 원천무효다. 이명박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10월30일에는 국정원 댓글공작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하는 공작에 관여한 국정원 법률보좌관실 정아무개 변호사가 춘천 소양강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5년 국정원이 전문해킹팀을 운영해 온 사건과 관련해서 임아무개 과장이 빨간색 마티스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것처럼 이번에도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정 변호사는 조사를 받은 며칠 후 국정원 댓글 관련 검찰 수사 방해공작을 주도한 옛 파견검사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다 뒤집어써야 하는 분위기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한다.

11월3일에는 국정원의 각종 정치공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6국)이 구속됐다. 추 전 국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과 정치인을 탄압하기 위한 기획문건을 만들고 실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가담하고, 공직자와 민간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비선으로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감찰을 벌인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에 대한 국정원 정보가 감찰 당사자인 우 수석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 관여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도 곧 소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권하의 국정원장과 박근혜 정권하 국정원의 국내 담당 2차장, 정치담당 6국장이 동시에 감옥에 잡혀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된다. 더 나아가서는 이들 차장과 국장을 지휘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감옥에 가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아 챙긴 혐의로 박근혜 최측근인 문고리 삼인방들이 11월3일 국고손실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은 국정원에 대한 대통령의 지휘·감독권을 배경으로 매월 1억원씩, 2013년 초에서 2016년 7월까지 대략 40억원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한 혐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 돈과 별도로 돈을 받아 제 주머니에 챙겼다. 이들 문고리 삼인방들은 공교롭게도 2014년에 동시에 강남일대에 5억원에서 10억원대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 돈의 출처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특수활동비 문제는 문고리 삼인방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이 돈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어디에 사용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지난해 7월께 미르재단(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국정원 상납을 “당분간 보내지 말라”고 중단시켰다가 대통령 지시라며 다시 2억원을 요구했고, 정호성 전 비서관이 이를 받아 갔다고 한다. 2014년 후반기 무렵 당시 민정수석이던 고 김영한 수석이 특수활동비를 부적절하게 받아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아 진상조사를 지시했으나, 박근혜가 그를 불러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라고 핀잔을 주며 조사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결국 그 돈은 박근혜가 받아 챙긴 것이다.

이뿐 아니라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도 5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챙긴 사실이 있다고 하고, 지난해 총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경선과 관련해 TK지역 진박후보 당선가능성을 감별하고자 청와대에서 발주한 여론조사에 국정원 특수활동비 5억원이 지출됐다고 한다. 가관인 것은 당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총선지지도가 높지 않게 나오자 결과를 조작해서 보고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국정원도 막가고 나라도 막간 것이다. 그런데도 촛불혁명을 이루고 그 혁명을 받아안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이 썩은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은 기대에 비해 미약하다. 11월2일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이 “차라리 국정원을 폐지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지적한 데 대해, 국정원장은 “적폐를 청산하고 국정원을 정권과 상관없이 철저히 조사하고 개혁하겠다”면서도 “현재 국정원법을 폐지하는 것보다 개정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 셀프개혁 정도에 그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정원 해체는 우리 민중의 오랜 숙원이다. 1960년대에도 학생운동권에서는 “중앙정보부에 불이 붙었다. 잘 탄다. 신난다. 양키들은 카메라만 돌린다”는 노래를 비밀리에 즐겨 불렀다. 유신체제하인 73년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은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유신반대 시위를 하면서 그 선언문에서 “파쇼통치의 원흉인 중앙정보부 해체”를 요구했다.

어느 노동자 시인은 5공·6공 시절을 회고하며 “공단 거리를 노동자의 환한 물결로 가득 메워 보는 것과 (…) 독점재벌 해체와 안기부 해체가 소원이었다”고 읊었다. 2013년에는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김광진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 및 강동원 무소속 의원 등 11명이 공동발의로 국정원을 해체시키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셀프개혁으로는 민주적인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없는 만큼 국정원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모든 목소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국정원은 셀프개혁 할 수 있는가. 대충 셀프개혁 하게 내버려 둬도 되는가. 국정원은 미 CIA를 본뜬 순수 정보기관이 아니라 히틀러의 게슈타포나 이란 팔레비의 사바크와 같이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고 국민을 감시·사찰·처벌·공작·탄압·고문·살해하는 국가비밀경찰이다. 이것과 민주주의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 보라.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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