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리운전노조와 전국택배연대노조 대표자들이 지난 11월 26일 국회 앞에서 노동3권 보장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기사들의 노조 설립신고를 받아들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던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설립을 문재인 정부에서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택배연대노조의 '사용종속성'에 비중을 두면서, 사용종속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부는 비슷한 시기 전국단위노조로 조직변경을 요구한 대리운전기사들의 조직변경신고서를 반려했다. "특수고용직에게도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문재인 정부 약속은 반쪽에 그칠 것인가.

◇택배연대노조 노동권 보장=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택배연대노조가 설립신고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해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고 밝혔다. 8월3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지 두 달여 만이다.

노동부는 택배기사가 △지정된 구역 내에서 사측이 정한 배송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점 △사측이 작성한 업무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어 택배회사·대리점으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점 △특정 사용자에게 전속돼 업무를 수행하고 사용자 허가 없이 유사 배송업무를 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택배기사들이 사용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는 만큼 사용종속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택배연대노조는 앞으로 사용자단체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고, 파업을 포함한 단체행동도 할 수 있게 됐다. 노조는 "택배노동자 권리찾기와 완전한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며 "사용자의 일상적 계약해지 위협, 과도한 대리점 수수료, 하루 5~6시간에 달하는 무임금 분류작업과 장시간 노동 등 택배노동자들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그러나 다른 업종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신고를 모두 받아 주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업종별 노동형태나 사용자에게 종속된 정도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방안을 검토 중인 노동부의 기본입장은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 유무 등 종속성 정도에 따라 노동기본권 보장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대리운전노조는 조직변경 신고 반려 "여전히 협소한 판단기준" 지적 잇따라=노동부가 택배연대노조와 비슷한 시기에 제출한 대리운전기사들의 조직변경신고를 반려한 이유도 이 같은 입장에 근거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리운전노조는 1995년 설립된 대구지역대리운전직노조를 전국대리운전노조로 변경하고 조합원 가입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며 조직변경신고를 냈다. 노동부는 "대구지역대리운전직노조와 전국대리운전노조가 조직대상 등에 있어 동일하지 않다"며 조직변경신고를 반려했다. 노조가 지역단위노조를 전국단위노조로 확대하겠다는데 노동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같은날 나온 상반된 결과에 대해 노동계는 "노동부가 사용종속성에 비중을 두면서 협소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사용종속성뿐만 아니라 경제종속성·조직종속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용자들이 사용종속성 지표에 대한 은폐·조작을 시도하는 경우 이들의 노동자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최근에는 대리운전기사처럼 사용종속성은 약하지만 스마트기기와 디지털플랫폼을 기반으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하는 특수고용직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택배연대노조 설립 인정은 바람직하지만, 노동부가 대리운전노조 변경신고를 반려하면서 대리운전노조와 비슷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 호출노동 업종에 대해서는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줬다"며 "아쉬운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누구가는 일을 하지만 사용자 책임성이 불명확해 노동권을 보장 못 받는 노동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노동부가 과거 기준에 맞춰 노조인정을 할지 말지를 따진다면 노동권 보장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노동부 관계자는 "대리운전노조의 경우 조직변경신고를 냈기 때문에 그 내용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며 "대리운전노조가 새로 설립신고를 내면 대리기사들의 근로자성을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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