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제주에 사는 친구가 수선화 몇 뿌리를 보내왔습니다. 늦은 7월이었습니다. 지난해 초겨울 활짝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수선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기에 봄 냄새가 물씬 난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실제로 수선화는 11월 중하순이면 피기 시작하고 이어서 유채꽃도 피며 제주는 그때부터 봄이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선화도 여러 종류인데 그중 유독 향기가 좋은 것도 있다며 때맞춰 보낼 테니 심어서 꽃을 피워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지요. 그냥 인사로 그러려니 했거든요. 또 페이스북 친구는 페이스북이라는 온라인에서의 관계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번 계절이 바뀐 어느 날 주소를 확인하는 문자가 왔고, 잘 포장된 수선화 알뿌리가 택배로 왔습니다. 배나 비행기에 실려 바다를 건너고 화물차에 실려 서울까지 와서 택배기사가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간 것이지요.

퇴근 후 확인하는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난겨울 그 가상세계에서의 약속을 잊지 않고 실행하는 그 친구가 너무 대단하고 멋져 보였습니다. 마침 우리 공동주택 옆에 작은 빈터가 있어, 담 밑에 수선화 뿌리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또 잊어버렸지요.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햇살이 밝게 비추고 밤이면 어둠이 내리고, 그렇게 내 바쁜 일상과 상관없이 담 밑 수선화 뿌리에게도 시간이 지나갔나 봅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무심코 보니, 놀라워라, 딱딱한 땅껍질을 뚫고 뾰족뾰족 수선화 새싹이 줄지어 나 있는 게 아닙니까. 그때에야 아차하며 물도 주었지요. 날씨가 쌀쌀해지며 그 뿌리들을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좁은 방이지만 창가에 나란히 놓았습니다. 매일매일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 추워져 얼음도 얼고 눈도 내리면, 그때 이 수선화들은 꽃이 피겠지요. 그 은은한 향기도 피어올라 퍼져 나가겠지요. 그리고 더 고결한 새봄을 선언하겠지요. 요즘은 제가 마치 봄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찬바람 불고 기온이 내려가도 조금은 덜 쓸쓸합니다.

지난 토요일은 촛불시민혁명이 첫 촛불을 밝힌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1조와 상관없이 실제로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왕적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시키고 새 대통령을 뽑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혁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새 대통령에 의해 적폐로 규정된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최고 권력 공안기관과 언론 등이 청산되고 있는 것도 대단한 진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노동이나 교육 등 사회개혁과 재벌 등 경제개혁이 주춤거리고 있다거나, 촛불혁명 앞자리에서 싸우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분들이 아직도 풀려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혁명의 내실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그날 1주년 기념 촛불대회는 편안하고 따뜻했습니다. 민주주의 확장으로 민중의 분출되는 요구나 주장은 다양해 서울 광화문광장 전체가 난장과 같은 분위기였으나, 오묘한 질서 속에서 새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큰 함선처럼 파도를 헤치며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 여러 생각에 잠겨 광장 한 모퉁이에 있었는데, 마침 민주노총 본부 상근활동가 몇 명이 지나다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두셋은 20대로 보였습니다. 같이 가던 낯익은 간부가 최근에 일하기 시작한 새내기들이라고 인사를 시키는데 씩씩하고 활기차 보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낡거나 때 묻지 않은 투쟁조끼가 너무도 신선해 보였습니다. 마치 좀 있으면 아름다운 향기와 함께 고운 꽃을 피울 수선화 새싹 같았습니다.

10월31일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제시하며, 그릇된 제도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안하고 가톨릭 개혁을 요구한 지 50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반박문은 베드로성당 건축에 관한 문제, 교황의 신적 권위, 면죄부의 해악 등을 지적하는 것이어서 당시로는 가톨릭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루터는 파문당하고 온갖 핍박을 당했으나, 가톨릭은 개혁의 계기를 맞으며 저항이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생겨나게 됩니다. 올해 기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반문하고 있습니다. 정말 지금 기독교는 얼마나 개혁됐느냐고 말입니다. 가령 루터가 반박문에서 쓴 95개 조항 중 하나인 43조 “그로스도인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는 조항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이런 핵심 조항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됩니다. 진정한 혁명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