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겹다. 지긋지긋하다. 노조가 총력투쟁해 간신히 노사합의를 맺어 놓아도 매년 원점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4년째 태광그룹의 케이블방송사인 티브로드에서 벌어져 온 일이다. 티브로드 사태는 해를 더할수록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합리적인 노사관계와 노사상생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나쁜 제도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각인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 후 사회 곳곳의 적폐청산 노력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유독 사회적 책무가 무거운 재벌사업장에선 제자리걸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태광그룹은 여전히 시대에 역행하는 반사회적인 기업행태를 고수해 왔다.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흑자 정리해고'의 대표적 사례인 흥국생명도 태광그룹 소속이다.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노조탄압으로 노사갈등이 되풀이돼 온 티브로드도 태광그룹 계열사다. 범법 행위를 저질러 오너일가 초유의 모자 구속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으면서도 줄곧 촛불민심을 외면해 왔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티브로드 서울사업부 정아무개 팀장이 추혜선 정의당 의원에게 막말욕설을 해 논란이 뜨거웠다.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갑질하라는 지시도 어처구니없지만, 갑질 지시만 했지 실제 갑질한 건 아니라는 변명으로 갑질의 정수를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관리자가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파국은 예정된 수순이다. 기껏 감봉 6개월 솜방망이 징계로 수습하려 하는 안이한 티브로드 사측의 행태가 볼썽사납다. 올해 한가위 최장 연휴에도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국회 앞 노숙농성 투쟁을 이어 왔지만 사측은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늘로 50일째 노숙농성하고 있는 티브로드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사측에겐 아직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태광그룹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티브로드는 매년 수백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왔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57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특히 횡령과 배임혐의로 재판 중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이현준씨는 티브로드 대주주로서 최근 3년간 132억원의 배당금을 받아갔다. 그러나 사측은 경영이 어렵다며 지난해부터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세 차례나 희망퇴직을 강행했다. 더구나 외주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까지 성과연동형 임금체계를 강요하면서 실적경쟁과 고용불안이 심화돼 왔다.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티브로드 원·하청 노동자들은 고용안정과 생활임금·노조활동 보장 등 절실한 요구를 내걸고 연례행사처럼 고단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시대를 거스르는 티브로드 사측은 여전히 노동자를 잘라내고 쥐어짜는 데만 여념이 없다. 사용자 책임은 내팽개친 채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티브로드 사측은 부당한 경영정책을 철회하고 노동조합과의 원만한 교섭을 통해 현안을 해결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태광그룹의 부당내부거래도 더 이상 뉴스도 아닐 정도로 빈번하게 문제가 돼 왔다. 총수 일가가 소유한 티시스에 김치·와인·상품권 등 다종다양한 일감몰아주기로 부당이득을 갖다 바쳤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태광그룹을 무능과 탐욕의 기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를 새겨들어야 한다.

불매운동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겐 양날의 칼이다.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자신이 땀 흘려 일해 온 기업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고민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선 노사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불매운동을 결의하고 티브로드 주요고객사인 롯데호텔 앞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태광그룹의 반노동·반인권 행태가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티브로드가 지금처럼 부도덕한 반사회적 기업행태를 개선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불매운동은 물론 SO 인허가 취소요구도 줄기차게 펼칠 것이다.

한국 사회 대표 노동적폐로 부각된 태광그룹은 각성해야 한다. 노조 탄압과 비정규직 양산에 혈안이 된 티브로드는 즉각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한 노사상생도 강구해야 한다. 언제까지 갑질-욕설 기업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을 것인가. 정규직과 비정규 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투쟁한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투쟁은 갈등과 반목이 일상화된 노동현장의 대안을 모색하는 소중한 선례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태광그룹 티브로드 경영진은 지금이라도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용단을 내려야 한다. 촛불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태광티브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람이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범이 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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