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반도체와 전자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 경화증·파킨슨병 같은 중증질환을 얻은 직업병 피해자 5명이 31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이날 오전 산재 신청에 앞서 서울 영등포 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 산재를 신속히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산재 신청자들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반도체 가공공정,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 오퍼레이터, SK하이닉스 이천공장 모듈테스트,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 엔지니어, 삼성전기 조치원공장 조립공정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다.

은영(37·가명)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997년부터 8년간 일하다 퇴사 1년 전 다발성 경화증(시신경척수염)을 진단받았다. 기흥공장은 고 황유미씨를 비롯해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반올림에 직업병 피해제보를 한 곳이다. 은영씨는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유기용제를 취급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주야 맞교대를 했다.

정은규(30)씨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에서 일하다 올해 2월 악성골육종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이소프로필알코올(IPA)·아세톤 등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UV경화용 접착제(실리콘)도 취급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지 10년”이라며 “반도체·전자산업 생상공정 위험성은 밝혀졌지만 사업주와 근로복지공단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이 질병의 업무 관련성 여부는 법률적·주관적 판단이라고 수차례 지적했다”며 “그럼에도 공단은 아직도 의학적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은 올해 8월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에게 발병한 다발성 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정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는 "상시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현대의학으로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해도 전향적으로 업무 연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공단은 대법원이 특별한 보호를 요청한 희귀질환 피해자들에 대한 산재 인정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산재 신청은 반올림이 2008년 4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신청을 시작한 이후 13번째다. 지금까지 94명이 30여개 질환에 대해 산재를 신청했다. 이 중 22명이 10개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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