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대통령께 편지를 두 번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드 배치와 신고리 공사 재개. 납득하지 못하기에 앞으로도 비판 대열에 설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 권력을 잡든 100% 다 풀 수 있는 정치는 없다며 한숨을 삼킵니다. 사드와 신고리 결정을 보며, 저는 역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께서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두 가지 사안만큼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강해졌습니다.

전쟁이 없는 일상시대에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서 성공한 정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바람의 하나입니다. 극단의 양극화로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비정규직·하청노동자·영세 상공인·불안정 청년 등의 절박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시점에 쓰겠습니다.

오늘 편지는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애절한 소망에 관한 내용입니다. 대통령께서 성공해야 한다는 바람의 또 다른 하나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세월호 가족들과 동고동락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어떨 때는 한 주에 네댓 번씩 안산과 서울을 오르내립니다.

처음엔 몰랐습니다.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안산에 내려가는 심신에서 기운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럴까. 간밤 술자리가 과했나. 그렇겠지 했습니다. 한데 아니었습니다. 멀쩡하게 내려가는데도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안산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이 안쓰러워, 무엇보다 악몽의 바다에 갇혀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이 불쌍해서,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대통령도 바뀌었으니 세월호 가족은 머잖아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힘을 더 내자.

마주한 사람이 분명 웃고 있는데 웃는 것이 아닌 묘한 상태, 다 큰 어른이 웃고 떠들다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황당한 상태. 어떨지 짐작할 것입니다. 살면서 가끔 겪는 일이니까요. 대체로 잘 적응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아이 영정을 끌어안고 잔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회의 도중에 어느 순간부터 초점 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영정이 있는 합동분향소에 꿋꿋하게 들어갔다가 눈물범벅이 돼서 기진맥진 나오는 어떤 아빠를 모르는 척 지켜보면서, 제 마음 한구석에 저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도로도 이토록 마음이 무너지는데, 저이들은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짐작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통령님. 박근혜 벽에 가로막혔던 세월호 참사의 남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될 것이라 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이 노심초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확정 문제입니다. 가족들은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공원 내 미조성부지에 아이들이 자리 잡는 생명안전공원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국무조정실은 그 방향으로 연내 확정을 목표로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애태우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의 반대 때문입니다. 땅값 떨어진다는 이유와 우울한 공간이 된다는 이유로 일부가 반대합니다. 정부의 안산지역 지원과 생명안전공원은 연동된 것인데도, 다른 지원만 받고 생명안전공원은 반대하자는 심보도 있습니다. 그걸 핑계로 해당 지자체인 안산시가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이러다 혹시 정부 계획이 바뀌거나 하염없이 미뤄지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 안산 엄마·아빠들은 4·16생명안전공원을 슬픈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먼저 간 아이들도 그런 공간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밝은 공간, 청소년 문화공연이 수시로 열리는 신나는 공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즐기는 소풍 공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명안전 대한민국을 꿈꿀 수 있는 공간, 바로 그런 공원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가족들은 12월23일 안산에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선물할 계획입니다. 아이들이 떠나고 맞이하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 안산의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흥겹게 즐겼을 그런 크리스마스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아이돌가수도 부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통령께서도 아름다운 선물 하나 준비하면 얼마나 기쁠까 상상합니다. 아이들이 자리 잡는 4·16생명안전공원 부지 확정이라는 선물을 준다면, 별이 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아이가 죽어 가는 끔찍한 광경 앞에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가련한 엄마·아빠들의 비참함을 3년 넘게 붙들었던 악독한 사회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것을 4년, 5년, 더 지속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가 확정되지 않으면 가련한 엄마·아빠들은 계속 묶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이들의 남은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세월호 가족들이 더 이상 울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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