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를 곁들인 대통령과의 만찬이 끝났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복원을 에둘러 표현했다는 만찬은 나름대로 의미를 채웠다.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 대표단이 사회적 대화 복원에 공감해서다.

민주노총이 불참해 반쪽 만찬에 그쳤지만 사회적 대화만큼은 뚜렷이 부각됐다. 만찬 식탁에 오른 콩나물밥·추어탕·전어는 물론이고 민주노총 불참과 관련한 논란까지 사회적 대화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만남에 참석하든 불참하든 노동단체의 선택일 뿐이다. 선택을 둘러싼 논란은 스스로가 감당하면 된다. 더 이상 노동단체 선택을 두고 필요 이상의 논란을 이어 갈 이유가 없다. 만찬도 끝났으니 전어 타령은 그만하자. 이젠 노사정이 본론을 꺼낼 때다. 무엇을 두고 사회적 대화를 할지 솔직해야 할 시간이다.

대화의 첫 번째 소재는 형식과 위상일 것이다. 양대 노총 모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라는 집이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다고 주장한다. 리모델링을 하거나 이참에 새 집을 짓자는 제안도 한다.

한국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하는 8자 회의를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노정교섭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대화체를 요구했다. 경영계와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재활용하자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와의 만남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대화가 진척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면 재건축이든 새 집을 짓든 수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노총이 “8자 회의 제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노사정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원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색이 바랜 낡은 집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위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사회적 대화기구 독립성·중립성 지표랄 수 있는 예산·사무국·관련법을 중심으로 봐도 그렇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노사정위 예산을 전용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소속 자문기구인 노사정위는 예산편성권이 없지만 노동부가 노사정위 예산을 전용했다는 사실은 뒷맛이 쓰다. 노사정위 사무국은 축소될 대로 축소됐다. 안타깝지만 노사정위 현주소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을 만들어 위원회 명칭을 바꾼 지 벌써 10년이다.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 차원에서라도 사회적 대화기구를 위한 새 집을 짓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위상과 형식이 사회적 대화의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논의하느냐다. 박근혜 정권은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 노사정 합의를 밀어붙였다. 그 시점에서 10년 전에 이뤄진 독일 하르츠 개혁을 모델로 삼았다. 청년고용 활성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통상임금·노동시간·임금체계 개편,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이 핵심 주제였다.

박근혜 정권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사회적 대화 프레임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규직 노동자 기득권 허물기에 주력했다. 성과연봉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과 저성과자 해고 근거를 제공한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이 이를 뒷받침했다.

문재인 정부는 9월 노동부 2대 지침을 폐기했다. 박근혜 정권 사회적 대화에 파산을 선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주제는 무엇일까.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기구 형식과 위상을 두고 날 선 대립을 하는 사이 이 문제는 뒤로 미뤄 둔 듯하다. 현재로선 ‘노동존중 사회 구현을 위한 로드맵’을 노사정위에서 논의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만 확인할 수 있다. 의미는 좋지만 추상적이다. 무엇을 다루겠다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박근혜 정권이 하르츠 개혁을 모델로 사회적 합의를 밀어붙였을 때 독일은 산업 4.0에 조응하는 노동 4.0을 추진했다. 4차 산업혁명이 제기된 가운데 기술변화에 맞서 노사정이 무엇을 할 것이냐를 논의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휩쓸고 지나간 사이, 세계는 일의 미래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기술변화가 대량실업을 야기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자는 노동계 주장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사회적 대화 알맹이도 노동계가 먼저 제시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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