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경찰이 강도사건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다. 현상금 100만원이 걸린 이 용의자 수배전단에는 ‘신장 180센티미터가량, 노동자풍의 마른 체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7년 전 얘기다. 당시 노동계는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청은 “사회통념상 ‘학자풍’이라고 하듯이 ‘노동자풍’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어이없는 해명을 했다. 그 뒤 경찰이 어떤 조치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배전단에서 ‘노동자풍’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오늘, 나는 ‘또 다른 노동자풍’을 발견한다.

“근로자 A씨가 회사 업무를 마치고 평소 퇴근하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여자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그는 대형 매장에서 선물을 고르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발목과 허리를 다쳤다.” 중앙일보 26일자 기사 도입부다.

고용노동부는 25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이 개정안은 내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이에 앞서 국회는 지난달 출퇴근길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고용노동선임기자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앞에 인용된 기사의 A씨는 과연 솔직하게 ‘여자친구의 선물을 사러 갔다가 다쳤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쓸 생활용품을 사러 갔다가 다쳤다’고 거짓말을 해서 산재 보상을 받을 것인가.

산재관련 기사는 돌연 진실게임으로 빠진다. 기자는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이 진실을 밝혀내면 달라지겠지만 개인의 사생활까지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며 인간의, 아니 노동자의 본성은 악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준다. 그는 친절하게 한 가지 사례를 더 든다. 등산하다 다친 근로자가 월요일 아침 출근하다 다쳤다고 주장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 라고.

노동자를 보는 기자의 색안경 시각은 기사 전체에 나타나고 있다. 산재보험급여 신청서에 있는 사업주 날인 제도를 폐지한 것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산재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업주가 피해 노동자의 산재보험급여 신청을 방해하는 수단으로 악용해 온 날인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산재 사망률이 얼마나 높은지, 또 인정률이 얼마나 낮은지는 수많은 자료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지난해 천만명이 봤던 영화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산재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면서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단 돈 200만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조사에 대한 국정원 개입 보도’를 막은 한 방송국 보도국장 출신 사장 사례를 들면서, ‘아마 모든 기자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급기야 중앙일보의 기자는 ‘강성노조가 버틴 대기업은 이중의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며 기어이 ‘조자룡의 헌 칼’을 꺼낸다.

강성노조이기에 산재신청 과정에서 불법과 부당함을 자행할 것이라는 기자의 논리 비약은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런 기술은 어디서 가르치고 배우는지 궁금할 뿐이다.

사물 혹은 사건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이나 의견을 편견이라고 한다. 노동에 대한, 특히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는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편견에 근거하며 보수언론은 이를 재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단언컨대 비록 가상인물이긴 하지만 기사에 나온 A씨는 결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