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만났다. 올해 5월 19대 대통령선거 이후 6개월여 만이다. 이날 만남을 두고 여러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귀담아들을 평가도 있지만 아예 소식을 전하지 않거나 대부분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한 주장이 많은 것은 아쉽다. 요컨대 만난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

평가는 객관적인 사실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 10년간 노동정책이 정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추진됐다.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고 노동자 개개인의 삶도 나빠져 경제적 불평등도 심해졌다. 이번 만남이 노정이 국정 파트너로서 관계를 회복하는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다. “오늘 노동계와의 대화가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원을 위해 제안한 8자 회의 취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1차 본회의를 주재할 경우 노사정위에 복귀하겠다.” 김주영 위원장 발언이다.

참담한 노동현실과 그 원인에 대한 대통령의 깊은 이해와 통찰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정책집행에 있어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정부와 동일한 지위로서 주체성을 인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 화답도 분명하다.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 회의를 시작으로 노사정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물꼬를 텄다. 청와대 회담으로 노동계와 정부 사이에 적지 않은 신뢰가 쌓였으리라.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다수 노동자들과의 대화도 늘려 가야 한다. 일단 만나야 한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0월24일로부터 꼭 1년이다. 설이 분분했던 당시 정부 국정농단이 <JTBC> 보도로 백일하에 밝혀진 날이다. 최순실 태블릿PC가 세상에 공개됐다. 시민들은 경악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했다. 4대 노동악법과 양대 지침이 고작 일개 사인과 기업의 이익을 좇은 결과라는 사실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보도가 나온 직후 세종시 집회에서 당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못을 박았다. 노동단체 최초의 선언일 것이다. 며칠 후 한국노총과 회원조합들은 시국선언을 하고 “노동자·국민의 여망을 담아 정권퇴진에 전체 조직이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촛불. 광장의 촛불은 올해 3월10일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국정 농단세력의 잇단 단죄에 이은 대통령선거. 돌이켜 보면 불과 1년이 지났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가히 ‘혁명’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도 ‘촛불혁명’이라 말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정신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하고 응원한다.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오늘의 상황이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동시간단축, 안전한 노동환경 보장, 노조할 권리 보장 등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시작도 못하지 않았나. 입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회가 문제다. 혁명의 기운이 의회라는 길목에서 막혔다. 부족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만약 우리나라가 완전한 의원내각제였다면 탄핵결정 이전에 민주적 정당성을 잃어버린 의회가 해산했을 것이다. 촛불정신을 담은 새로운 의회가 구성돼 혁명을 완성해 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이 절차가 더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정의에 부합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당장 국회 구성을 바꾸는 헌법이나 법률 개정은 쉽지 않다.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에서 헌법 개정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혁명과 노동기본권 회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절대 아니다. 현행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면서 할 수 있는 정책이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노동시간단축에 걸림돌이던 정부 행정해석을 폐기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기다리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고민을 알 만하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를 집행함에 있어 장관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노사정 합의로 촘촘한 대안을 만들어 보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분명 성과에 ‘신뢰’까지 쌓일 것이다.

작게 보면 사회적 대화는 정책집행 정당성을 담보한다. 특히 현재와 같은 위헌적인 의회 구성에서 그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주영 위원장이 사회적 대화의 시작을 알렸다. 양자의 정확한 상황인식에 따른 포석이리라. 촛불정신을 실현해 나가는 주체는 ‘사회적 대화’여야 한다. ‘진짜 혁명’의 길은 아주 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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