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촛불시민혁명으로 개헌의 장이 마련됐다.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9차례 개헌이 있었다. 4·19 혁명 이후 3차 개헌과 6·10 항쟁 이후 9차 개헌, 반민주행위 처벌 목적의 소급입법 근거 마련을 위한 4차 개헌 이외 6차례 개헌은 집권자 또는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유지하거나 권력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감행한 것이다. 이번에 추진되고 있는 10차 개헌은 다시 한 번 국민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헌정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30년간 시행되고 있으나, 촛불시민혁명으로 그 한계와 복원력을 보여 줬다. 정권에 의해 권력이 사유화되고 남용됨으로써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에 대한 취약성을 노정하는 한계를 보였다. 반면 헌법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 탄핵결정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그 복원력을 증명했다. 10차 개헌은 1987년 헌법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촛불시민혁명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용 측면에서 기본권을 강화하고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대폭 도입하는 것이어야 하고, 절차 측면에서 촛불시민혁명을 이뤄 낸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강화돼야 할 기본권 중 대표적인 것이 노동권이다. 노동자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다수 세력임에도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으며, 노동 3권 보장 수준은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 문제는 헌법 문제라기보다는 법률과 해석의 문제이므로 개헌에 큰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물론 국회가 제대로 입법하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개헌 기회에 노동권 강화를 위한 최선의 개정안을 마련하고, 나아가 실제 개헌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권 강화를 위한 개헌안을 ‘근로’ ‘근로자’를 ‘노동’ ‘노동자’로 바꾸는 것 외에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항들이 도입돼야 한다. 비정규직은 96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대우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는 인권 문제다.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 취약계층을 형성하며, 비정규직 증대는 곧 양극화 심화다. 모든 선거 때마다 대부분의 후보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헌법 차원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노동법상 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국가 의무로 고용‘증진’만이 아니라 고용‘안정’ 정책 시행을 명시하며, 고용안정정책 일환으로 직접고용 및 무기고용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법 핵심조항이자 헌법재판소도 노동의 권리로 인정한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한다.

둘째,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삶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은 시민이 공동체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변화를 이뤄 냈다. 자신과 관련한 사항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은 민주시민 및 자주적 인간의 본질적 요건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취업규칙에 법규범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입법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자주적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개별적 노동관계에서는 ‘노동조건의 노사대등 공동결정’ 원칙을 명시하고, 집단적 노동관계에서는 노동자가 사업운영에 참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의 대등한 협상력 확보를 위한 노동 3권을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제헌헌법은 노동 3권 조항의 1문으로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2문으로 이익균점권을 규정했다.

헌법 개정 역사를 살펴보면 노동 3권 보장 조항은 그 내용이 많고 복잡해질수록 권리에 대한 제한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는 목적 한정 문구, 공무원인 노동자의 노동 3권 제한, 주요 방위산업체 노동자 단체행동권 제한 조항 등이 그렇다.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단순하게 노동 3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규정하는 방안이 가장 확실하다. 예컨대 “노동자는 단결,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의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만 두는 것이다.

노동 3권을 사회권으로 해석해서 많은 법률상 제한 규정을 합헌으로 해석한 경험을 반성하고 노동 3권의 자유권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자유’를 명시한다. 단결권에 대해서는 그 주체를 ‘노동자’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노동조합 결성권과 가입권’을 보장한 국제인권규약들이나 유럽의 헌법들 중 그 주체를 ‘모든 사람’으로 한 예가 많다. ‘모든 사람’을 단결권 주체로 할 경우 특수고용 노동자 등 노동자에 해당되는지 한계선상에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단결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다만 노동조합의 설립·운영 및 국가 보호 등에 관해 규율하는 법률들이 노동자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한편 결사의 자유와 구별되는 단결권의 특수성을 감안해 단결권 주체를 ‘노동자’로 하고, 법률과 해석론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단체행동권을 별도 항으로 규정할 경우 그 목적을 ‘경제적·직업적 이해관계에 관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로 확대하거나 아예 폐지함으로써 소위 경영전권사항이라는 이유로 쟁의행위 정당성을 부인하는 잘못된 해석을 예방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은 경찰과 군인에 대해 예외를 두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경찰과 군인의 단체행동권 제한 근거를 규정하는 것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개헌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노동 3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가 즉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인 87호·98호 협약을 즉시 비준하고, 위헌적인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처분을 즉시 취소하며, 전국공무원노조에 즉시 설립신고증을 교부하고, 나아가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수리하면 즉시 설립신고증을 교부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제도를 사실상 운영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률 개정, 대표적으로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 조항 개정에 나서야 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론을 전개하고, 기왕에 잘못된 선결례가 있으면 이를 변경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청원경찰의 노동 3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청원경찰법에 대해 기왕의 입장을 변경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바 있다. 그와 같은 조항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하거나 국회가 개정해야 한다.

국회도, 대통령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개헌은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기본권 강화, 그 최소한의 내용 중 하나인 노동권 강화는 시대적 과제이므로 이를 포함해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을 모아 국민의 힘으로 개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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