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건설노조

지상 수십미터 송전탑에 오르는 사람들.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감전 위험이 도사리는 송전탑 위에서 전선을 연결하거나 교체한다.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하는 송전공사를 낙찰받은 송전시공업체에서 상용직이나 기간제가 아닌 일당제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일이 있을 때 모였다가 일이 없는 비수기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전국으로 흩어진다.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올해 6월과 9월 한국전력공사와 두 차례 면담에서 지속가능한 일자리 확충과 상용직 전환·안전관리 강화를 요구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23일 오전 나주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총력 결의대회를 한다.

“노후한 철탑 유지·보수로 일자리 늘려 달라”

“너무 살기 힘들어요. 전력 소모가 많은 여름과 겨울에는 외려 작업이 없어요. 여름과 겨울 비수기에 노후한 송전탑 안전도검사를 비롯한 유지·보수 작업을 하면 2003년 태풍 매미 때처럼 송전탑이 붕괴되는 일은 반복되지 않겠죠. 국가는 정전사태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 저희는 고용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충구 건설노조 송전지회장은 25년차 송전 전기노동자다. 그는 2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1년에 길어야 150일 정도만 일한다”며 “한국전력공사가 노후한 송전탑 안전을 도모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송전 전기노동자 규모는 270명 정도다.

이충구 지회장은 3개월째 경상남도 김해 상동면에서 송전탑 전선을 교체하고 있다. 39명의 동료들과 모텔에서 숙식하며 34만5천볼트가 흐르는 노후전선을 바꾸는 중이다. 이 지회장은 “송전탑이 혐오시설이다 보니 깊은 산속이나 변두리에 건설돼 있다”며 “작업을 할 때마다 전국 오지를 떠도는 신세”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추석연휴에 집에 다녀온 뒤 아직 식구들 얼굴을 보지 못했다. 노후전선 교체작업은 짧게는 일주일, 길면 두세 달 걸린다.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늘 출장가방을 들고 송전탑이 있는 전국을 돌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전선을 새로 연결하거나 교체작업을 할 때는 송전선 전기를 끊는 휴전작업이 이뤄진다. 전력수요가 많은 겨울과 여름에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성수기에도 한 달에 일하는 날이 20일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지회장은 “비수기가 긴 탓에 항상 빚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지난겨울과 여름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비수기에 일용직 일자리로 떠난다. 작업이 있는 봄과 가을이 되면 다시 송전탑으로 모여든다.

신규인력은 거의 없다. 간혹 송전전기원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 와도 오래 버티기 힘들다.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에 따르면 송전 전기노동자 평균 나이는 46세, 경력은 24.5년이다.

“감전사·추락사 목격하고 트라우마 시달려”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하루에 9~10시간 일한다. 오전 7시에 작업을 시작해 오후 5시면 작업이 끝난다. 전기를 차단한 채 휴전상태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업은 '빨리빨리' 진행된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전기가 끊기면(휴전) 발전소에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전력이 휴전작업기간을 빠듯하게 잡는다”며 “휴전작업기간을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어떻게든 작업을 빨리 하려고 해요. 노동강도가 높죠. 안전조치를 생략한 채 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눈앞 송전탑에서 동료가 떨어지고 감전으로 목숨을 잃는 장면도 봤어요. 그런 현장을 목격하면 며칠 동안 일을 못 합니다. 트라우마가 생기죠. 노동강도를 낮추고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합니다.”

올해 7월에도 여주 여천동 고압송전탑에서 페인트칠을 하던 노동자가 감전돼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전기재해통계에 따르면 2014년 전기설비 공사나 보수작업을 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고 208명이 다쳤다. 전체 감전사고의 38.1%나 된다.

송전 전기노동자는 거듭된 안전사고와 열악한 노동환경 뒤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전력이 송전건설 발주를 하면 낙찰받은 전기공사업체가 또다시 송전전문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다. 업체는 다시 일용직 송전 전기노동자를 고용한다.

허현무 건설노조 조직국장은 “송전 전기노동자들은 전력산업 최전선을 책임지고 있는데도 한전이 발주하는 송전공사를 낙찰받은 송전시공업체에서 상용직이나 기간제도 아닌 일당제로 일한다”며 “전국에 있는 52개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에서 이들을 직접고용해 고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국장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생명·안전업무에서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며 “송전 전기노동자들이 하는 송전선로 교체·연결, 송전탑 위 절연체 정비 업무는 안전업무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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