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난 18일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 담긴 관련법 개정안을 내년 상반기에 내놓겠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과 법정노동시간을 2022년까지 1천890시간으로 낮추겠다는 내용도 관심을 끈다. 더불어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절차가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와 재계, 전문가들은 로드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일자리정책에 부속된 노사관계정책 보완해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5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일자리정부를 표방하는 새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위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개선 방안을 연차별 계획을 통해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바람직하다. 과거 정권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더불어 로드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노정협의를 하고 사회적 대화를 존중·실천한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과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인정,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를 올해부터 바로잡겠다는 것은 새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매우 긍정적이다.

문제가 되는 지점도 발견된다. 노동기본권 등 노사관계정책이 일자리정책 하위범주화·부속화돼 있다. 로드맵 발표시기가 예정보다 3개월 이상 지연됐음에도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확충’ 등 7월에 발표했던 국정과제 내용보다 구체화되지 못했다. 사회서비스공단 일자리 개수가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을 기술진보와 산업 측면에서만 접근하면서 일자리 소멸과 비정형노동 확산 같은 노동의 미래와 대응이 생략된 점은 보완해야 한다.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당초 계획과 다르게 추진되고 있다. 재검토해야 한다.


일자리 해결책 큰 그림 없어 성과 못 낼 수도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국정운영 제1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부문을 통해 어떻게 민간부문을 견인할지에 대한 관계를 명확히 보여 주지 못했다.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을 냈을 때도 근거가 불명확하고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발표로도 이런 의구심을 잠재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민간부문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사회적기업 활성화와 창업을 언급했다.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으로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없다. 병행해야 한다는 수준에 그칠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본론에 대한 구체성이 안 보인다. 예전처럼 낙수효과로 민간부문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는 정부가 아니라면 기업들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시장질서에 맞지 않다는 반론을 두려워한다면 이전 정부가 했던 길을 답습하면 된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해야 하는 상황인데, 공공부문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민간부문은 수단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문제를 두고 산입범위 논란이 불거지는 데 정부가 일조하고, 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사건 해결에 주춤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면서 행정명령은 회피하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편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겠지만 이런 문제는 사실 비정상의 정상화 문제다. 즉각 고칠 것은 고치고, 법·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문제는 로드맵을 만들면 된다. 지금 정부는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를 뒤섞어 판단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합리적 의심이 쌓여만 간다.


노조할 권리 보장·노동시간단축 방안 아쉬워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이번 로드맵에 초기업단위 교섭,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채용원칙,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등 노동계가 주장했던 내용이 적지 않게 수용됐다. 불법파견 확정 판결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은 그동안 정부가 방기했던 책무를 이제라도 다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반가운 일이다.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민주노총은 일자리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노조할 권리 보장이 우선과제로 선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전달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조할 권리를 하위 정책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자리 정책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확인한 아쉬운 대목이다.

노동시간단축도 마찬가지다. 공약이었던 ‘1천800시간대’ 단축목표를 ‘1천890시간’으로 변경했다. 공약 위반은 아니지만 궁색하다. 주 52시간 근로 확립을 정책목표로 제시했다. 근로기준법상 정상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고, 최고 한도가 52시간이다.

법 취지 실현이 아니라 법 위반을 안 하겠다는 게 정책목표로 제시된 셈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도 비정규직 규모나 심각성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자회사 전환을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책으로 제시했는데, 그것도 간접고용이다. 자회사 전환이 비정규직 고용조건을 개선하는 수단일 수는 있겠지만 정규직화는 아니다. 또 다른 간접고용일 뿐이다.


시의적절하지만 노동시장 경직 우려도
이상철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이상철 한국경총 사회정책본부장

일자리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 로드맵이 마련된 것은 시의적절하다. 같은날 발표된 통계청의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9.2%,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1.5%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그동안 추진된 각종 청년일자리 정책들이 무색할 정도다. 상황이 이런 만큼 재정·세제·금융·조달·인허가 등 국정운영 모든 정책수단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신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하는 등 로드맵에 제시된 정책들을 속도감 있고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보다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추진해야 할 정책도 있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 파견규제 강화 등 일자리 질 제고정책의 상당수는 노동시장 경직성을 심화시켜 고용기피 현상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우리 경제에 과도하고 급격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향후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노·사·정 간에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강화보다는 기업이 취업문을 충분히 열 수 있도록 고용여력을 제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로드맵 이행 과정 세밀하게 점검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방향은 전향적이다. 이전 정부와도 확실히 차별화됐다. 일자리 양뿐 아니라 질까지 담보하는 대책이다. 비정규 노동자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대체로 잘 담겨 있어 완성도가 높다고 본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내년 상반기에 입법화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다. 비정규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게 사용사유 제한이다. 비정규직 규모와 관련해 결정적인 프레임을 확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과 함께 사용사유 제한이 쉽지 않겠지만 목표로 했다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정임금과 차별시정 방안도 대체로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제시됐다.

다만 81만개 일자리 중 30만개를 차지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현장에서 세밀하게 점검되지 않고 있어 우려된다.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 방식이 유력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직접고용을 추진하되 자회사는 예외적으로 승인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양상으로 가는 흐름이 존재한다. 공공부문 일자리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은 정부가 좀 더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 성공을 위한 결정적인 조건은 노조할 권리 확대다. 노조 조직률이 제고되지 않으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화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순위로 밀린 듯해 아쉬움이 있다. 좀 더 보완한다면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기대할 만하다. 계획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후속 실행계획을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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