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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활짝
   
 

비 예보에 우산을 챙겼는데 종일 짐이다. 술 한 잔 먹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가볍고 이쁜 데다 버튼만 누르면 착 펴지고, 탁 접히는 기특한 것이었다. 설마 하고 나선 날엔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 사무실 구석 주인 없는 우산을 찾아보는데, 그 흔해 빠진 게 마침 없다. 편의점 들러 제일 싼 우산 찾는데 속이 쓰리다. 살이 삐죽 나간 찢어진 우산을 뒤늦게 발견한다. 울상을 짓는다. 신발장 한구석에 우산이 쌓여 간다. 우산 사는 게 제일 아깝다는 잔소리에 대꾸하다 보니 저녁 식탁 국이 식는다. 설레었던 한때, 연인은 한 우산 아래에서 살가웠다. 어깨 다 젖는데도 우산 하나는 가방 깊숙이 넣어 뒀다. 비 들이칠까, 상대 키 맞춰 드느라 목이 굽었다. 슬쩍 스치던 어깨가 부쩍 가까웠고 둘은 곧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였다. 소나기 쏟아지던 어느 날 저녁, 황급히 우산 챙겨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린다. 가방 무거운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치킨이냐, 파전이냐 따위 야식 메뉴를 두고 실랑이했다. 치킨은 사랑이라고 아이가 정리했다. 우산 아래 사랑이 깊었다. 맑은 날 우산 든 사람들이 노조할 권리를 외쳤다. 헌법에 이미 새겨 새삼스러운 얘기였다. 노조 만들었다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아 한편 늘 새로운 얘기였다. 갑작스러운 비에 우산이 귀하다. 우산 내어 주고 꾸부정 목 굽어 함께 걷겠다는 다짐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활짝 펼칠 일이 남았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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