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우리은행이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과 은행 VIP 고객 자녀 등 20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내부적으로 국정원·금융감독원, 우리은행 전·현직 임직원 자녀와 친인척 등을 명시한 지원자 명단 20명을 정리했다. 여기에 이름이 오른 이들은 모두 합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우리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공개채용에는 1만7천여명이 지원했다. 이 중 200여명이 최종 합격했다. 우리은행 인사팀은 “해당 문건이 내부에서 작성된 것은 맞지만 채용 이전에 작성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기관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채용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강원랜드의 경우 2012~2013년 합격자 518명 전원이 채용청탁 대상자였다는 정황이 추가적으로 드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기고 있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의원실 출신 인턴의 채용을 청탁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사건이 사회적 논란으로 제기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또한 최근 감사원이 35개 공기업을 포함한 주요 53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감사에서 부정사례가 100건 적발됐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허탈감이 예사롭지 않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우리 사회 현실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놀랍다는 반응들이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귀족’ 내지는 ‘철밥통’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는 공공기관들이 주된 채용비리 연루 대상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정치적으로는 공격 대상이지만, 사적으로는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취업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욕망의 메커니즘이 흥미롭다. 자식 취업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에게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된다’는 허세를 부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지 알긴 하는 걸까.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정부 대책으로 추진되는 ‘블라인드 채용’ 실효성에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불필요한 출신이나 스펙에 대한 질의를 줄이고 직무역량 중심 채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선도적 모범을 보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정책이다. 하지만 채용비리로 상징되는 신뢰 상실 사건들이 거듭될수록 정부 대책은 실질적인 효과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채용비리가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 대기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된 만큼 특단의 조사와 대책이 요구된다. 현재까지는 관련 조사가 감사원 등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공정한 전수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민간 당사자와 전문가 참여에 기반을 둔 광범위한 실태파악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위공직자와 특권층의 채용비리를 규제·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구직자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2014년 제정됐지만 구직자가 기업에 제출한 서류 반환의무 등만 규정했을 뿐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규제·처벌 조항은 포함돼 있지 않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채용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인 만큼 조속히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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