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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가 되지 못한 자의 권리로서 노동권?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노동헌법이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2018년 개헌에서 노동권 관련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런 내용의 노동권 개헌운동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노동권은 시민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노동자와 건물주 중 무엇을 하고 싶냐 물어보자. 십중팔구는 건물주를 선택한다. 지난해 한 언론사가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임대사업자가 2등을 기록했다. 무엇을 하는지보다 얼마나 버는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건물주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노동은 건물주가 되지 못한 자의 의무일 뿐이다. 더군다나 개헌 무대의 주인공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시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노동권 개헌은 아예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노동권 개헌 내용이 현실을 바꿀 만한 구석을 못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권이 그나마 시대적 의제로 올라서려면 건물주의 나라가 된 오늘날 대한민국을 준엄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개헌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개헌안은 ‘근로’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고 32조에 ‘노동의 권리’를 분명하게 명시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실제 내용을 보면 노동의 권리와 기존 근로의 권리가 별로 다르지 않다. 32조 개정안은 노동의 권리로 고용안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부당해고 금지, 상시업무 직고용 등을 명문화하자는 것인데 요약하면 고용돼 공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노동의 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근로의 권리와 무슨 차이가 있나. “건물주가 되지 못해 근로를 통해서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국민은 임대료에 준해 안정적이고 공정하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과 저 위의 노동의 권리가 무엇이 다른가. 고용과 임금을 핵심으로 한 노동의 권리는 근로의 권리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전문에 넣는다는 “노동존중 평등사회 실현”도 실체가 없는 말이다. 자본주의에서 수입에는 귀천이 없다. 건물주의 재산소득인 임대료와 노동자의 노동소득인 임금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재산수입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노동만 존중돼야 할 이유가 없다. 근로의 권리보다 한참 앞(23조)에 있는 재산권은 공장과 같은 자산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만든 생산물을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재산(공장)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으로 만든 생산물을 소유할 수 없으며, 자본가가 주는 임금을 받을 권리만 있다. 이것이 근로 또는 노동의 권리며, 그래서 헌법 개정안은 이 권리가 자본가에게 안정적으로 고용돼 공정하게 임금을 받을 권리라고 분명히 주장한다. 재산권 우위의 노동 권리를 헌법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의 권리가 고용임금에 대한 권리인 한 노동존중은 노동을 너무 천대하지 말라는 의미의 존중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사용하는 평등사회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평등은 언제나 무엇이 평등한지가 중요한데 자유주의 세력은 이를 기회의 평등, 즉 경쟁의 공정함으로 해석해 왔다. 노동존중 평등사회는 정확한 규정보다는 노동과 연계한 평등을 복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선 맥락에서 보자면 공정한 임금을 받아 노동자 격차가 축소되는 사회, 재산소득과 노동소득이 함께 존중받는 사회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존 헌법도 이 정도 이야기는 한다. 공정한 보상과 모든 수입이 평등하다는 원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 원칙이다. 기존 헌법의 평등 개념을 되풀이할 뿐인 ‘평등사회’는 공허한 삽입구일 뿐이다.

나는 노동의 권리를 노동을 통해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권리로 해석하는 한 노동권 개헌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해 봤자 노동자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껏 해 봐야 노동의 권리는 건물주가 되지 못한 자들의 노동 수입에 대한 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세상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노동권 개헌은 보다 급진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노동을 사회적 부를 만드는 근본으로 규정하고, 그 노동을 행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권리로서 노동권을 제기해야 한다. 이런 노동권 개념에서는 우리 경제공동체가 사회적 노동 분업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의 공동체일 것이며, 이는 곧 불로소득의 원천인 재산권을 제약할 수 있는 권리로서 노동권이 정의된다는 뜻이다. 노동권 개헌안은 전문과 헌법 32조·33조 개정으로 노동의 권리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물론 이런 방식의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재산권의 하위권리로서 근로의 권리를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것은 현시대에 대한 문제제기 방식으로도, 실제 현실을 개혁하는 데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 건물주의 나라를 비판하지 못하는 노동의 권리는 오늘날의 정세 속에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개헌만 볼 것이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이나 이와 연계한 노동법 개정까지 염두에 둔다면, 내년 개헌은 현실성보다도 대국민 노동권 교육의 계기가 되는 것이 낫다. 그러려면 당연히 노동권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토론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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