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내 삶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단어는 아마도 ‘헬조선’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15년 어디쯤인가에서 등장한 헬조선은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한국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신조어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는 걸까” 하고 고민했다. 생존하기 위해 헬조선을 떠나거나 남아서 ‘노오력’하거나.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개인의 ‘노오력’으로는 답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은 계속 ‘노오력’을 강요당한다. 개인의 ‘노오력’은 성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돼야 한다. 자아실현이나 자기만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왜 ‘청년문제’에 주목하는가. 아마도 교육에서 노동으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세대로서 이 과정에서 실패란 곧 생존에서의 탈락이라는 무서운 공포가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년노동의 핵심은 미취업과 비정규직화다.

올해 7월 청년실업률은 9.3%(통계청)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년실업률은 개선되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의 청년실업률은 악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취업준비생은 72만8천명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11만명이나 증가했다.

이것이 단지 실업률의 문제일까. 청년 문제는 단지 생애주기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대학 학자금 대출로 졸업 후에도 학자금을 갚느라 청년빈곤층이 되고, 안정된 직장(이 있기는 한가?)에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1% 대기업과 99%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직장인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두 배 정도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40% 수준으로 3배에 가까운 임금격차를 보인다. 즉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 ‘질’이다.

이렇듯 사회문제로 대두된 청년실업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청년의 미래를 걱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청년일자리”라고 외쳤다. 청년고용 문제가 심각하니 기성세대가 임금피크제와 쉬운 해고를 수용하라고 대기업과 한통속이 돼 노동자와 국민을 협박했다. 청년들은 박근혜표 노동개혁의 볼모가 됐다. 청년실업 문제의 핵심에는 재벌체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고용노동부 노동개악 2대 지침은 촛불로 열린 새 정부에서 공식 폐기됐다. 박근혜 정부의 273억원짜리 고용디딤돌사업은 박근혜표 청년실업 일자리사업으로 포장됐으나 실상은 저임금· 허드레 일자리에 청년들을 가두는 정책이었음이 밝혀졌다. 청년고용 정책은 노동개악을 위한 명분이었다.

청년문제가 단지 청년일자리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청년실업은 전 지구적 문제라는 것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불안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청년의 삶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고용과 관련해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제시하며 ‘공정한 취업’을 말하고 있다. 무엇이 ‘공정함’일까.

청년문제를 개인의 ‘노오력’이 아니라 공동의 노력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사회적 해법이 제시되길 바란다. 다행히 헬조선에서도 탈조선보다는 ‘인간의 존엄’을 선택한 촛불들이 있었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을 배신하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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