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컨에 자리 잡은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의 노조 조직화 노력이 미국철강노조(USW)의 패배로 끝났다. 지난 10월13일 끝난 노조 인정 투표 결과 USW 가입을 지지한 표는 전체 300표 중 136표에 불과해 과반에 15표 모자랐다. 노조 인정 투표는 공장 식당에서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오전 8시부터 9시 반까지와 오후 8시부터 9시 반까지, 모두 합쳐 네 차례 총 6시간 동안 중앙노동위원회(NLRB)의 감독하에 진행됐다.

9월19일 USW는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300명 중 80%의 서명을 받아 노동위원회에 노조 인정 투표를 신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노동자 가운데 80%의 서명을 받을 정도면 여세를 모아 바로 노조 설립신고를 하면 되지만, 대한민국보다 더한 노동후진국인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사업장 노동자 3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노동위원회에 노조 인정 투표를 요청할 자격이 주어진다. 요청을 받은 노동위원회가 노조 인정 투표를 조직하기까지 다시 2~3주가 걸리고, 이 기간에 사용자는 노조 가입을 방해하기 위한 반노조 캠페인을 맹렬히 전개한다. 우리로 치면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할 기회가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마리아 소마 USW 조직국장은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 사용자가 수십만 달러를 들여 노동자들의 요구를 해결하기보다는 반노조 캠페인을 벌였다”며 “USW는 공장에서 공정함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계속 함께할 것”이라는 결의를 밝혔다. 노조 인정 투표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경우 노동위원회는 노동조합에 다음 노조 인정 투표를 1년 후에 하도록 요구할 수 있지만, 소마 국장은 “노사 중 어느 한쪽이 법률을 위반한 경우 재선거가 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재선거 신청을 비롯해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 조직화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USW가 노동위원회에 노조 인정 투표를 요청한 바로 다음날인 9월20일 금호타이어 사측은 메이컨시에 소재한 노조조직화 파괴 전문 로펌과 바로 고액의 계약을 체결했다. ‘콘스탄지·브룩스·스미스·프로펫LLP’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로펌은 금호타이어 공장이 자리한 조지아주에 메이컨시는 물론 주도인 애틀랜타와 웨스트포인트 등에 3개의 사무실을 갖고 있다. 미국 전역 15개 주에 수십 개의 사무실을 두고 있다. 12명의 변호사가 근무하는 메이컨 사무실은 조지아주사용자협회에 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

금호타이어 공장의 노조 조직화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 변호사인 멜빈 하스는 150번의 노조 인정 투표에서 98%의 승률을 기록했다고 로펌 홈페이지에 자랑하고 있다. 그의 주특기는 “(사용자를 위한) 노사관계 자문, 반노조 캠페인(union campaign), 기업 인수합병, 노조 조직화 저지(union avoidance), 노동위원회 소송” 등이다. 노조 조직화 분쇄에서 보인 높인 성공률 덕분에 하스 변호사는 2010년 이후 꾸준히 “가장 강력한 (반)노동변호사(The Nation’s Most Powerful Labor Attorneys)”에 선정됐다. 이 타이틀은 자본가로 하여금 사업장을 지배하고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도록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하스 변호사에 대한 고객 평에는 “반노조 전략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노조의 조직화 시도를 성공적으로 패퇴시켰으며 (…) (반노조 캠페인) 전략 개발에서 전술 집행까지 이 로펌에서 제공한 자문과 지도보다 우리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었다”고 적혀 있다.

지난여름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 노동자들은 USW의 문을 두드렸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과 연공, 안전과 건강 문제를 상담했다고 소마 조직국장은 기억했다. 공장이 설립되고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으나,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듭 무시했고, 마지막 의지처로 노동조합을 찾아온 것이다. 소마 국장에 따르면 크라이슬러·현대·기아 공장의 승용차에 끼울 타이어를 생산하는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건강과 안전 문제다. 노동자들이 적절한 보호장구 없이 화학물질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USW가 소개해 준 어느 노동자는 "공장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노동자만 탓한다. 회사는 쉬쉬하고 있으며, 많은 것들이 비밀에 쌓여 있다. 의사소통은 형편없고, 불공정한 처사가 가득하다. 각종 규칙도 노동자와 대화 없이 한국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비판했다. 이 노동자는 “모두에게 노조는 필요하다.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에서는 질문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노조만이 이런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USW 한 간부는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의 한국인 사용자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이 현지 통역을 써서 미국인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건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 경우 통역이 제대로 통역을 하는지 한국인 사용자도 미국인 노동자도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금호타이어 조지아공장의 노조 조직화 시도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 투자와 관련해 삼성만 무노조·반노조 정책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현대·기아차처럼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대기업도 삼성과 동일한 정책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금호타이어는 물론 현대차나 기아차 등의 대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현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 중에는 노조원도 있다고 들었다. 지구적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한국 독점자본의 무노조·반노조 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제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고민이 깊어진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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