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을지대학교 을지병원지부 조합원들이 총파업 4일째인 지난 13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 로비에서 파업 집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보건의료노조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러 나왔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노원구 을지대을지병원 1층 로비. 앞에 선 발언자가 외치자 노란 조끼를 입고 머리에 빨간띠를 두른 노동자 250여명이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노조 을지대을지병원지부에 속한 간호사·간호조무사·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들이다.

이들은 10일부터 파업 중이다. 을지대병원(대전)·을지대을지병원(서울) 노사는 추석연휴 동안 교섭을 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9일 최종교섭도 결렬됐다. 노조는 임금총액 7.4% 인상을 요구했다. 병원은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조정안인 총액 5% 인상안을 고수했다. 노동자들은 이날 대전과 서울 병원 로비에 모여 파업출정식을 열었다.

사립대병원 임금격차 지적했더니 종합병원 임금 제시?

노조는 파업출정식에서 "을지대병원이 의미 없는 숫자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을지대병원 노사는 임금 통계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지부는 “을지대병원 임금 수준이 전국 7개 사립대병원의 60% 수준”이라며 임금격차 해소를 촉구했다. 반면 을지대병원은 “지난해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을지대병원 임금수준은 직원 1천명 이상 전국 31개 종합병원의 80% 수준”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노조에 공개사과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병원측 임금산정 기준이 생뚱맞다는 입장이다. 차봉은 을지대을지병원지부장은 “병원측은 사립대병원이 아닌 국·공립병원과 민간 종합병원 등이 포함된 종합병원을 기준으로 계산한 임금수준을 발표했다”며 “다른 사립대병원과의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고 있는데, 을지대병원은 핵심이 뭔지 임금비교 대상이 누구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봉은 지부장은 “중요한 것은 임금수준이 60%냐 70%냐가 아니다”며 “핵심은 올해부터 사립대병원 평균임금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인 만큼 숫자 싸움은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6년 일하고 월 140만원 받는 간호조무사

“다른 사립대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내 급여를 들으면 놀라요.”

파업 대열에서 발언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아무개씨 얘기다. 송씨는 5년차 간호사인데 월 급여는 세후 270만원 정도다. 얼마 전 간호·간병 업무를 같이하게 되면서 급여가 올랐다. 송씨는 “급여가 올라도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사립대병원 간호사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며 “인력이 부족해 밥 먹거나 화장실 가기도 힘든데 급여가 너무 적다”고 토로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아무개씨도 자신을 5년차 간호사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밤근무 7일을 해야 한 달에 220만~23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설과 추석에 명절수당 20만원씩 받긴 하지만 연봉에 포함되는 돈이다. 식대 지원비도 4만7천원에 불과하다.

이번 파업에는 비정규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계약직 간호조무사로 6년 일했다는 박아무개씨는 “급여가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씨 한 달 급여는 연장근로수당까지 합쳐 140만원을 조금 웃돈다. 6년이나 계약을 연장하며 일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넘게 일한 기간제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박씨는 2년이 되기 전에 퇴사했다가 재입사하는 방식으로 근무했다. 그는 “기간제법을 피하려는 병원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물리치료사 한아무개씨도 “10년 일했는데도 월급여가 210만원에서 220만원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는 병원측에 "15일에 교섭하자"고 요구했지만 병원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원측은 “파업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여서 임금교섭 요청에 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병원 운영이 안정화되는 즉시 노조의 임금교섭 요청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노조는 지난달 5일 인력확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실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쟁의조정을 신청한 사업장 96곳 중 파업에 들어간 곳은 을지대병원·을지대을지병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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