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린 <가을편지>는 이 계절 대표곡이다. 노래는 1971년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의 1집 앨범에 수록돼 있다. 김민기가 작곡했고, 가사는 고은 시인의 시선집 <삶>에 수록된 같은 이름의 시에서 가지고 왔다.

시인은 낙엽이 쌓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날 외롭고, 헤매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계절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이들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고 흥얼거린다.

그런데 정작 고은 시인은 10년이 넘도록 매년 가을 스웨덴 노벨상위원회에서 안타까운 소식만 전해 듣게 되니 이는 차라리 받지 않는 것만 못한 편지와 같다.

가을의 편지는 대중가요의 단골 메뉴다.

김광석은 “잊혀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 파”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고 윤도현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다고 하니 가을은 편지를 쓰고, 기다리게 하는 계절이다.

가을 편지가 감성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 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여도”(노래를찾는사람들 <사계> 중) 공장의 미싱(재봉틀)은 잘도 돌아가기만 한다.

이처럼 노동자의 삶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매일 13시간씩 일하다 인정 못 받는 죽음, 과로사’ ‘한국 노동자 몫 보상 OECD 최하위권’ ‘17년째 기업은 살찌는데, 가계는 더 말라 간다’ ‘정규직 전환 심의위 꾸린 공공기관 절반 안 돼’ ‘달력 빨간 날인데 연차 내고 쉬시나요?’ 등등. 지난 추석 연휴기간 동안 나온 신문기사 제목이다.

변화는 외부 조건과 자연환경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선인들은 말씀하셨다.

추석 전 한국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 제안’이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지난겨울 뜨거웠던 촛불혁명이 진정으로 염원했던 거대하고도 근본적인 프로젝트,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한 여정을 시작해 보자는 내용이다. 이 편지에 명확한 답을 해 줘야 할 곳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문재인 정부다.

보름 넘게 지난 현재까지 회신은 없다. 답장이 오지 않을 때 우리는 몇 가지 경우를 예상해 본다. 수취인 주소가 명확하지 않든지, 이사를 갔거나 수취인이 거절했을 때 기다리는 답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편지 수취인은 “사회적 대화기능의 실질적 복권을 위하여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내걸고 한국노총과 정책협약을 맺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수취인 주소는 틀림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거나, 거절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도 전해들은 바 없으니 이 역시도 ‘다른 경우의 수’에 해당되지 않는다.

답장을 할지 말지 받는 사람 맘이라 시간의 정함이 없는 연서라면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리겠지만, 한국노총의 편지는 유통기한이 있다. 개혁에는 때가 있고, 과거와 변함없는 노동자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쌓인 낙엽이 흩어지고 사라지기 전에,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저 홀로 설 수 없기에, 잊혀 간 꿈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가을 편지의 답장을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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