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는 ‘노동’에 기초하는 민주공화국이다”고 헌법 1조에서 선언한 국가는? 언제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무래도 ‘노동’에, 그것도 헌법 1조에 둔 뜻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몇 나라를 제시해 봤지만 모두 오답. 정답은 바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 대한 필자의 편견 탓일까. 아니 좁디좁은 지식 탓이리라. 한방 맞은 머리로 찾아보니(웹서핑) 각국 헌법 1조만 정리해 놓은 자료도 있지 않은가. 2000년대 들어 경제가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이탈리아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범인은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사치명품이 횡행하는, 그래서인지 G7국가의 핵심 국가이지 않는가. 이 나라의 헌법 1조가 “노동에 기초하는 민주공화국”이었다.

지난가을부터 1년여간 우리 사회는 헌법정신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구현해 냈다고들 한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내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 시한도 정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친다.

정말이지 얼마 남지 않았다. 노동을 포함한 각 주제에 대해 국회를 넘나들며 개헌 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진다. 내로라하는 학자와 헌법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점점 더 답답함이 커져 온다. 이러다 ‘촛불정신’이 간곳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럴 때일수록 획기적인 변혁이 필요한데, 그저 그렇고 그런 찬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한계를 정하지 말고 그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나라의 모양을 헌법에 담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상상 그 이상이 필요하다. 제안하건대 각국의 헌법을 읽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노동과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그 나라 국민의 의지는 놀라울 따름이다.

이탈리아 헌법을 한 번 더 소개하자면 39조에서는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은 자유다”고 선언한다. 단결권이 논란의 여지없는 불가침의 자유권적 기본권임을 확실히 한다. 우리가 많이 참고하는 독일기본법은 9조에서 “단결권이 자유권 이상의 기본권”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행위의 효력도 무효임을 헌법에서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법률 행위 효력까지 정한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법률가라면 ‘가능한가’ 하고 되물을 만한 규정이다.

프랑스는 헌법 전문에 노동존중의 정신을 상상 이상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천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노동조합활동에 의해 그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며 또한 그가 선택한 노동조합에 참가할 수 있다”고. ‘노동인권선언’과 다르지 않다. 헌법 구석구석 중요하지 않는 조문이 없지만, 그럼에도 전문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런 전문에 ‘노동조합할 기본권’을 피부·인종·종교를 넘어 모든 ‘인간’이 그 주체임을 적고 있다.

부러운 내용들이다. 그리고 실제 이러한 헌법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더 부럽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건 선진국 이야기지, 우리에게는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200년 이상 헤아리기 어려운 시민들의 피로 쌓아 올린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헌법이 있더라도 우리의 현실과 준법 수준이 그에 따르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장식헌법’으로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부쩍 “있는 헌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면 그만이지”라는 소리가 들린다. 선의를 존중하더라도 한쪽 면에서만 일리 있는 말이다. 먼저 현행 헌법이 새롭게 등장한 기본권을 담는 데 부족하고 더구나 통치권 규정이 시민 의사를 왜곡한 결과 헌법 1조의 정신을 제대로 실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한 동의를 얻고 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헌법정신을 제대로 세울 때에나 법률과 제도가 이를 좇을 수 있지 않겠나.

모름지기 촛불의 정신은 헌법 개정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광장에 쏟아진 시민과 노동자들의 정신을 헌법에 담아 내야 한다. 말로만은 절대 안 된다. “법률 없으면 자유 없다”는 오래된 법언을 안다. 정신과 의지 못지않게 이를 담는 틀과 그릇이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노동과 노동기본권도 물론 그렇다. ‘노동을 존중한다’는 정부를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맞이했다. ‘노동존중의 정신’이 제도로서 지속가능하려면 그 시작은 헌법 개정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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