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임금체계 개편 과정에서 노조탄압 의혹을 받은 KPX케미칼이 부당노동행위를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확인됐다. 노조가 지난해 93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현장에 복귀하자 "징계수위를 낮춰 주겠다"며 노조 집행부 총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KPX케미칼 지주사인 KPX홀딩스의 양규모 회장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집행부 총사퇴하면 징계수위 낮춰 주겠다?

11일 화학노련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김문영 KPX케미칼 대표이사가 김종곤 KPX케미칼노조 위원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집행부 총사퇴를 요구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3월21일과 25일 두 사람이 독대한 자리에서 김 대표는 “집행부가 큰 탈퇴를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 징계를…. 위원장은 면직을 면하고,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갈 수 있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는 면직을 결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다시피 면직을 하면 지방노동위원회에 가서 구제신청을 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갔다가 법원에 가면 4~5년은 서로 피곤한 모습이 될 수 있다”며 “깔끔한 모습을 보여 주시면 제가 회장님에게 말씀을 드려서 위원장님 면직만큼은 면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기는 노조가 93일 파업을 마무리하고 복귀한 지 10여일이 지난 시점이다. 2015년 8월부터 임금교섭을 한 노사는 호봉제 폐지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노조는 같은해 12월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3월8일 현장복귀를 선언했지만 회사측은 이튿날 직장폐쇄를 했다. 심지어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노조 집행부 중징계 방침을 밝혔다.

노사는 현장복귀 이후 “파업기간 중 상호 제기한 고소·고발·진정 등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동일한 내용을 민형사 기타 일체의 법률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회사는 진행 중인 징계를 최소화하고 조합은 향후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사규 위반, 위법행위를 재발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제명된 비조합원 복권은 노조 자유 권한”

김문영 대표는 녹취록에서 파업기간 노조에서 제명된 비조합원 복권도 언급했다. 노조는 파업 당시 파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술을 마시고 대오에서 무단으로 이탈해 문제를 일으킨 조합원 21명을 영구제명했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3월25일자 녹취에서 “집행부 다 사퇴하고 위원장님 노조 탈퇴하고, 영구제명한 사람들 다 복권시키는 게 내 그림이었다”며 “같이 가야 된다. 단지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은 보이는 즉시 대기발령이라고 경고를 했다”고 말했다.

김종곤 위원장은 녹취록에 대해 “면직을 면하게 해 준다면서 내건 조건이 집행부 총사퇴와 영구제명자 복권 두 가지였다”며 “기존 노조를 뽑아내고 원하는 사람을 노조에 새로 넣겠다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3월21일 대화 이후 사퇴 입장을 밝히고 간부들에 대한 징계 철회를 요구했지만 김문영 대표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며 “집행부 대다수가 감봉 3~4개월을 받고, 부위원장과 사무장은 정직 15일, 위원장은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고 말했다.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징계 판정을 받자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회사측 노조 탈퇴 종용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노조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노조탈퇴를 종용하는 행위는 법률상 불이익 취급과 지배·개입 행위에 해당한다”며 “비조합원 복권 여부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문제인데 회사가 복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는 김문영 대표 발언과 관련해 KPX케미칼측 해명을 들으려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내용을 파악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는 짤막한 답변만 들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