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다산)

대상판결 : 대법원 2017.8.29. 선고 2015두3867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11월18일 삼성전자 주식회사에 입사해 LCD 사업부 천안사업장에서 LCD 패널 화질검사 업무를 담당했다. 원고는 입사 후 외부공기와 차단돼 있는 사업장에서 방진복을 입고 2003년 5월께까지는 3조2교대(1일 12시간 근무 원칙)로 일을 했고, 그 이후부터 퇴사할 때까지는 4조3교대(1일 8시간 근무가 원칙이나 1~2시간의 연장근무 지속) 근무와 3조2교대 근무를 번갈아 가면서 업무를 수행했다. 입사 후 1년 정도 근무한 때인 2003년 10월께부터 오른쪽 눈과 팔다리 쪽에 이상을 느껴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고, 이후 증상이 점점 더 심각해져서 2007년 2월15일 퇴사했다. 원고는 2008년 6월30일께 희귀질환 중 하나인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고, 2010년 7월23일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2011년 4월7일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원심)은 모두 원고의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간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법리를 설시했다.

이를 전제로 원고의 경우 ① LCD 패널 검사작업 중 이소프로필알코올이라는 유기용제를 취급했는데 약 4년3개월 근무하는 동안 매일 이러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누적된 노출 정도가 낮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② 작업장 자체의 구조로 말미암아 인접한 납땜 작업이나 에이징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이 전파·확산돼 원고도 이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③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를 했을 당시에는 원고가 근무한 때부터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 사이에 LCD 패널 검사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이 변했을 가능성이 있어 원고가 근무했을 당시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고, 이소프로필알코올이나 그 밖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측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 ④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이 LCD 모듈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등에 관한 정보를 영업비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했다는 점 ⑤ 유해화학물질 측정수치가 작업환경노출 허용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근로자가 유해화학물질에 저농도로 장기간 노출될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 있다는 점 ⑥ 작업환경노출 허용기준은 단일물질에 노출됨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화학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 ⑦ 다발성 경화증의 직접 발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유기용제 노출, 주·야간 교대근무, 업무상 스트레스, 햇빛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이 거론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정이 다수 중첩될 경우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또는 악화에 복합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⑧ 삼성전자 LCD 사업장과 이와 근무환경이 유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다발성 경화증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 발병률이나 원고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 발병률과 비교해 유달리 높다면 이러한 사정 역시 원고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상당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3. 평가

이번 대법원 판례의 첫 번째 의의는 ‘전통적인 산업 분야’와 달리 원고가 근무한 삼성전자 LCD사업장과 같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환경과 근로조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산재인정 판단의 고려 요소로 삼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의의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업장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에 관한 정보제공 거부 등을 노동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한 점에 있다. 즉 첨단산업 분야 현장에서 근무했고, 발병한 질병이 희귀질환에 해당하며, 사업주가 화학물질 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입증책임을 전환시켰다고 평가해 볼 만하다. 세 번째 의의는 유해화학물질의 측정수치가 작업환경노출 허용기준 이내라고 할지라도 ‘저농도 장기간 노출되는 경우’에 건강상 장애 초래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 그리고 ‘여러 유해화학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또는 ‘주야 교대근무’ 등의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발생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인정한 점에 있다. 무엇보다 이번 대법원 판례의 내용들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의 시민·사회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내용을 법리적으로 일부 수용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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