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이미선(가명)씨에게 추석연휴 10일은 먼 나라 이야기다. 그나마 올해는 연휴가 길어 추석 당일을 포함해 나흘을 쉬었다. 18년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렇게 오래 쉰 것은 처음이란다. 대개 명절 휴일은 길어야 이틀이고, 하루도 쉬지 못한 날이 많았다. 이씨는 “백화점이 한 달에 하루 휴업하고 날짜도 일정하지 않다”며 “이번에도 하루뿐인 휴업일을 추석 당일로 대체했다. 매번 명절 때마다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1회에서 월 1회로, 줄어드는 백화점 휴점

백화점은 1990년대만 해도 매주 월요일 휴점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월 1회로 휴점일이 줄었다. 백화점 매출이 늘면서 신설 백화점이 증가했다. 중소 백화점은 한 번도 휴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휴업일수는 줄었지만 영업시간은 늘었다.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1년 폐점시간이 저녁 7시30분이던 A백화점은 영업시간을 30분 연장했다. 영업시작 전 준비와 영업종료 뒤 마감까지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11시간을 넘겼다. 백화점에서 16년 근무했다는 구혜정(가명)씨는 “휴점일이 고정돼 있지 않고, 회사도 휴점일이 언제인지 새 달에 임박해서야 통보하는 경우가 많아 한 달 일정을 계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씨는 “백화점에서 하루 11시간을 서서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목도 일자목이 됐다”며 “동료들 중에는 엄지발가락 한 마디가 밖으로 휘는 무지외반증을 앓거나 난임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365일 영업 면세점 “쉬는 날에도 대기모드"

백화점 노동자만 고정된 휴일 없이 불규칙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다. 면세점에서 화장품 판매원으로 15년 동안 일했다는 최민하(가명)씨는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 없다”고 한숨 지었다. 주말이나 명절, 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면세점은 1년 365일 영업체제로 운영된다. 면세점 노동자들은 서로서로 월별 스케줄을 맞춘다. 일주일 중 이틀을 쉬는데, 주말엔 고객이 많아 주로 평일을 휴일로 정한다. 최민하씨는 “휴일에도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에서 연락이 오기 때문에 쉬어도 늘 대기모드”라고 토로했다.

면세점 영업시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면세점은 총 48개다. A면세점의 경우 폐점시간이 2000년대 초반 저녁 7시30분이었는데, 지금은 밤 9시로 1시간30분 늦춰졌다. B면세점은 자정을 넘겨서까지 영업하다 최근 밤 11시로 줄였다. C면세점은 아침 6시30분에 개점해 밤 9시30분에 폐점한다.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씩 2교대로 일한다.

영업시간이 늘면서 노동자들 생활도 바뀌었다. 강민영(가명)씨는 “공항 면세점은 일찍 문을 열고 늦게 폐점하는데, 저녁조에서 아침조로 바뀌는 날에는 두 시간밖에 못 잔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함께할 시간이 적다 보니 아이가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며 “일하는 동안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백반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영업시간 규제하고 의무휴업일 지정해야”

노동자들은 백화점과 면세점에도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만 의무휴업일을 강제하고 있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공휴일 중에서 매월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한다. 다만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구혜정씨는 “유통업 서비스 노동자가 편해야 고객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며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질을 고려한 근무환경을 회사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윤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현재 백화점과 면세점은 의무휴업일이나 영업시간 제한이 없어 노동자들 건강이 악화되고 삶의 질도 떨어진다”며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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