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통상임금 상승과 노동시간단축이 우리나라 작업장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기제가 될 수 있을까. 패러다임이라는 단어까지 쓰고 보니 좀 거창하다 싶은 생각도 들지만, 현장 노사관계를 오랫동안 관찰해 온 사람으로서 그렇게 됐으면 하는 희망을 담은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작업장 노사관계를 거칠게나마 평가하자면 ‘노동시간의 독점화’로 추상화하고 싶다. 통상임금이 낮은 임금수준에서 작업장 노사관계 이해당사자는 노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에 갇혀 있었다. 노동시간은 임금 확보라는 공식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작업장 단위에서 노동시간은 노동자별로 분배되지 않는다. 제조업을 기준으로 보면 생산물 단위로 노동시간이 분배된다. 제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어느 회사에 두 개의 공장이 있고 1공장과 2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다르다. 제품이 다르다는 것은 공장마다 생산량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량은 시장수요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두 제품의 시장수요가 같은 양이면 문제될 게 없지만, 수요 차이가 있을 때는 노동시간 차이를 부른다. 1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수요가 많을 때 노동자는 연장근로와 주말 특근까지 해야 한다. 2공장은 수요가 적다면 하루 8시간 노동으로도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1공장 노동자가 그들의 노동시간을 2공장 노동자에게 나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노동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의미한다. 하나는 노동력을 로테이션하는 방법이고 다른 방법은 1공장 일감을 2공장에 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두 방법 모두 작업장 노사관계에서 실현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 작업장 노사관계의 정치가 작동했다. 회사로서는 노동시간을 분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노동력을 로테이션하는 것은 관리가 복잡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로테이션할 인원을 선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교육훈련도 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일감을 2공장으로 분배하는 문제도 비용이 수반된다. 1공장 제품을 2공장에서 생산하려면 추가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1공장 노동시간을 늘리는 게 이익이 크다. 여기에는 1공장 노동자의 이기심도 작동한다. 확보된 노동시간은 임금이기 때문에 계급적 행동보다는 경제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결국 1공장 노동자는 그들의 노동시간을 독점화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공장 간 ‘물량 싸움’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 독점화는 직무 간에도 발생한다. 임금체계가 연공급으로 결정되는 작업장에서는 직무 간 임금 차이를 수당으로 정하고 있다. 노동강도와 직무환경 차이에 따라서 수당을 차등화한다. 직무의 성격에 따라서 수당을 차등화하는 것은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특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직무수당이 없거나 낮은 공정 작업자는 노동시간을 통해서 임금을 보전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다수의 간접직 노동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조업의 경우 직접직은 설비의 가동시간에 따라 노동시간이 정해진다. 노동시간을 개별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간접직은 노동시간을 개별 노동자가 통제하는 재량권이 주어진 경우가 많다. 간접직 노동자는 직무수당에서 차이 난 금액을 추가 노동시간을 통해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 임금체계가 직무 가치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통상임금과 노동시간을 작업장에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단순한 변수로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작업장 노사관계가 노동시간의 양을 독점화하는 체제로 구축됐다면, 앞으로는 노동시간 질을 둘러싼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이 주목해야 할 관점이다. 앞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결정된다면, 노동시간의 양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결국 유연한 근무형태와 이에 연동된 임금체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작업장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분기점에 놓여 있다.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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