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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노래극 <불꽃> 쇼케이스] 스물두 살의 전태일, 노래하다
   
▲ 이은영 기자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전태일의 글에 가수 김현성이 곡을 붙인 <유서>가 흐르자 관객 속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중년의 한 남성 관객은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훔쳤다. 스물두 살 전태일의 결코 쉽지 않았을 그 결단이 47년이 흐른 지금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전태일 노래극 <불꽃>의 막이 올랐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에는 10대부터 중장년까지 전태일을 만나기 위해 모였다. 180여석이 매진돼 공연장 통로에도 간이의자가 놓였다. 문화예술기획 시선이 기획하고 전태일재단이 후원한 전태일 노래극 <불꽃> 쇼케이스. <불꽃>은 전태일의 글에 음악과 연출을 맡은 가수 김현성이 노래를 입혀 청년 전태일의 삶과 1960년대와 70년대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의 이야기를 음률로 전하는 노래극이다.

이은영 기자


전태일 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

이날 쇼케이스에는 전태일의 친구이자 바보회 회원인 이승철씨가 함께했다. 그는 전태일과의 추억을 꺼내 놓으며 관객들을 과거로 안내했다. 초대손님으로 무대에 오른 이씨는 47년 전 인생을 바꿔 놓은 한 친구를 만났다. 바로 전태일이다. 이씨는 “70년 9월 전태일을 처음 만나 그가 사망한 11월13일까지 50여일간 매일 함께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태일을 통해 근로기준법은 물론 법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당시 평화시장 봉제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씩 고된 노동을 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에요.” 이씨는 전태일 정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랑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어요. 태일이가 죽은 후 친구들은 이소선 어머니를 함께 모셨어요. 저는 결혼 전까지 어머니 집에서 함께 살았죠. 태일이 뜻을 받들어 최일선에서 투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친구들은 늘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배우 김진휘씨가 읊조린 전태일 일기에는 어린 시다들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막내 동생보다 어린 소녀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착취에 가까운 노동을 견뎌 내는 모습을 보며 전태일은 많은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배고픈 어린 시다들을 위해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다 주고 정작 자신은 고픈 배를 부여잡고 두세 시간을 걸어 다닌 전태일은 말 그대로 바보였다.

“좋다. 우리는 바보다”

전태일은 69년 9월 동료 재단사들과 함께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결성했다. 전태일과 재단사들은 모임의 이름을 왜 ‘바보회’라고 지었을까. 김진휘씨가 전태일을 대신해 그 이유를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기계 취급을 받고 업주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 현실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바보답게 되건 안 되건 들이받아나 보고 죽자.”

관객석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좋다. 우리는 바보다”를 외치며 바보회 결성을 알렸다. 마치 69년 9월 스물한 살의 전태일과 평화시장 재단사들처럼 환호하고 기뻐했다.

“우리는 바보회. 우리는 모였다. 우리는 똑똑해. 사람들이 우리를 바보라고 해도 우린 웃어 버린다. 의리를 알고 정의를 아는 평화시장의 청년들. 노동조합은 아직 잘 모르지만 사람답게 살려고 하네.”(우리는 바보회/ 김현성 작사·곡)

이은영 기자


전태일을 다시 호명하는 지금, 그리고 우리

쇼케이스에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노 대표는 지난 17대 총선 선거운동을 기록한 <선대본 일기>로 13회 전태일 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역 정치인이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기는 처음이었다. 본격적인 공연 전 무대에 오른 노 대표는 “태어나 받은 상 중 제일 영광스러운 상”이라며 일기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95년께 이소선 어머니께서 ‘태일이가 죽은 지 25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 하나 없느냐’는 말씀을 하셨어요. 능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당시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로 3년간 현장을 돌고 있는 저로서는 허투루 들리지 않았어요. 정당을 만들 힘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 말씀을 듣고 정말 죄송하고 부끄러웠어요. 2004년 총선을 치르며 매일 일기를 썼어요. 그리고 10명의 국회의원을 진보정당에서 배출하게 됐죠. 전태일 영전에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기 전체를 전태일재단에 내게 됐습니다.”

70년 11월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구름다리에서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지금 그는 없지만 그가 사랑했던 어린 시다들은 공연장을 찾아 그와 함께했다. 전태일이 세상을 뜬 지 14일 만에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고 활동한 조합원들은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와 눈물로 호응했다.

노래극을 관람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47년이 지났지만 지금 여러 노동현장에서 전태일을 다시 호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오늘 이 공연이 전태일 정신을 다시 새기는 자리가 될 수 있어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극에 대해 “책이나 강연이 아닌 노래와 글이 주는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다”며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전태일이 어린 시다들과 연대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연대하는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단은 노래극을 보완해 현장 노동자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은영  ley141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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