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최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과 관련한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의 진정 사건을 연달아 인용하고 있다. 파견 허용업종 범위 확대를 추진하던 지난 정부 행태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명백한 증거를 갖추고도 중요한 판정에서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굵직한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정부가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2년 묵힌 사건, 새 장관 취임 후 전격 결정

24일 노동계에 따르면 대구지방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지난 22일 금속노조 아사히사내하청지회(지회장 차헌호)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과 지티에스를 상대로 제기한 파견법 위반 고소사건에서 "불법파견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회는 경북 구미시설공단에 위치한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인 지티에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2015년 5월 결성한 조직이다.

아시히글라스는 노조가 생긴 지 한 달 뒤 지티에스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지티에스는 다시 소속 노동자 170여명에게 문자로 해고를 알렸다. 지회는 같은해 7월 아사히글라스와 지티에스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자신들이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투입돼 원청의 지휘·감독하에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부당노동행위 혐의도 제기했다. 지회는 "노조 결성 후 업체 소속 노동자 전원이 일시에 해고된 것은 사용자들이 노조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지회에 발송한 공문을 통해 “해당 사건 수사를 완료해 아사히글라스의 파견법 5조·7조 위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아사히글라스에 다음달 3일까지 파견노동자 178명을 직접고용하라고 지시했다. 회사가 노동부 지시를 거부하면 1인당 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회사는 노동부 직접고용 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는 그러나 부당노동행위는 무혐의로 처리했다. 차헌호 지회장은 “진정이 제기된 당시 내려졌어야 할 당연한 결정이 2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온 것”이라며 “노조가 세워지자 단 하루 전기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한 뒤 다음날 조합원 전원을 일제히 해고한 것이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면 뭐가 부당노동행위냐"고 반문했다.

"부당노동행위 인정, 적극적인 제도개선 시급"

같은날 노동부는 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80여명이 올해 3~5월 세 차례 제기한 파견법·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사건 조사 결과를 통지했다. 노동부는 “원청인 만도헬라와 사내하청인 서울커뮤니케이션 등이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는 지회 주장을 인용했다. 노동부는 홍석화 만도헬라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노동부는 근기법상 한도인 주 1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것에 대해서도 "협력업체가 아닌 홍석화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금속노조는 “정규직과 혼재근무 방식이 아닌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다 하더라도 원청의 지휘·명령 관계 아래 있다면 불법파견이 맞다는 것이 또다시 확인된 것”이라며 “연장근로시간 위반에 대해 만도헬라를 실제 사용자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 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동부는 이달 말까지 만도헬라에 하청업체 비정규직 전원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노동부가 21일 파리바게뜨를 불법파견 사업장으로 지목하고 5천378명의 제빵기사·카페기사를 직접고용하도록 시정지시한 것도 업계에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글라스와 만도헬라는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취임 직후 현장방문에서 "불법적인 고용행태와 부당노동행위를 바로잡겠다"고 강조한 사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불법파견 판정 자체는 합당하지만 미뤄 왔던 당연한 결정을 한꺼번에 내리면서 자칫 생색내기로 읽힐 수 있다"며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적극적인 부당노동행위 판정과 함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나 파견법 폐지를 포함한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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