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내가 서울로 와서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ㅅ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경험했던 일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모든 게 낯설기도 했지만 내가 근무한 이 학교는 유독 장애학생이 많았습니다. 한 반에 3~4명이 배정돼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야 하거나 솔잎지팡이를 양 어깨에 끼고 힘겹게 다니는 소아마비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들어 보니 당시 이 학교는 휠체어나 중증장애학생들을 위한 램프시설까지 갖춘 학교여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이 학교 옆으로 이사를 와서 이 학교에 배정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해였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며 배정된 학생을 보니 다소 중증인 학생을 포함해 장애학생이 4명 있었습니다. 속으로 조금 염려되면서도 크게 걱정은 안 됐습니다. 몇 년의 경험에 의하면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학생이라도 일단 학교에 와서 학급 교실까지만 오면, 그 다음부터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게 잘 해결됐기 때문입니다. 정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누군가는 배려하고, 누군가는 양보하고, 누군가는 도와주며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워 거동이 힘든 장애학생이 함께 있는지를 잊어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봄·가을로 소풍을 갈 때가 문제였습니다. 학교 가까운 곳에 북한산과 도봉산이 있어 거기로 곧잘 소풍을 갔는데 중증인 장애학생들은 알아서 빠지는 등 부담을 덜어주기도 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북한산 백운대로 등산소풍을 하기로 학급회의에서 결정했다 해서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양쪽 목발을 짚고 겨우 다니는 병상(가명)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죠. 병상이는 언제나 밝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긴 했으나, 중증소아마비의 몸은 평지도 오래 걷기 힘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풍 전날 불러서 알아서 쉬든지 해도 좋다고 했는데, 굳이 같이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출발하면서 반장 등 학급 임원들을 불러 당부를 하는데, 한마디로 아무 염려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소풍 장소를 정할 때부터 충분히 협의를 했고, 본인도 양해를 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거였지요. 우리는 백운대 정상을 향해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들끼리 이미 그렇게 약속을 했는지, 몇몇 학생이 병상이 앞뒤에서 병상이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평평한 곳이면 혼자 걷게 하고, 좀 가파르면 적절히 도와주고, 힘들어하면 같이 쉬고, 뒤처지면 기다려 주고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병상이에게 맞춰 가며 그렇게 산을 같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조금씩 걸음이 늦어졌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백운대 꼭대기 부근은 전체가 큰 바위인 데다 경사가 심해 병상이가 오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형편이 그러면 거기 잠깐 기다리게 하고 다른 학생들이라도 얼른 정상에 다녀오면 될 텐데, 우리 반 학생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험한 급경사 길을 어떻게 올랐는지 표현하기 힘듭니다. 다만 우리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백운대 꼭대기에서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모두 같이 힘차게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해를 마무리하며 학급문집을 만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고 신나는 일로 병상이와 함께했던 그 소풍을 대부분의 학생들이 꼽고 있었습니다.

병상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거기서 터 잡고 살며 목사가 됐습니다. 요즘도 페이스북 친구가 돼 가끔 만나는데,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한 뜨거운 삶을 살면서 조국의 친구들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한 장의 사진이 우리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합니다. 서울 강서구의 어느 곳에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그 인근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공청회장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제발 같이 살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혹시 이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그 주변 집값이 떨어질까 염려해서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측은지심의 인간 본성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천박하게 됐는지요?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모든 것에 우선해서, 돈만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발적 돈의 노예가 됐는지요?

이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학생과 통합교육을 하는 학교 사례를 보면 아이들은 여전히 장애인·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것을 즐거워하며, 서로 도와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언제부턴가 들어와 있는 이 물신주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심각한 헬조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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