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건강의 적이다. 야간 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일하다 쓰러지고 죽는 과로사회다. 과로사회 밑바닥에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이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이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속도는 게걸음이다. 한국노총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정·자동차·의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해 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무섭다. 두렵다.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기저기서 살려 달라, 제발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처절히 외친다. 거리에서, 병원에서, 노동현장에서 살인자가 무고한 노동자를 흉기로 위협한다. 노동자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노동자 생명을 지켜야 할 책임자는 뒷짐을 진 채 외면한다. 살인자가 날뛰는데 잡을 생각은 않고 방치하고 있다. 그럴수록 살인은 계속된다. 죽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대한민국 현실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살인공화국’이다.

살려 달라는 외침! 국회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전령사 집배원들이 과로사·돌연사 그리고 자살과 분신으로 죽어 가고 있다. 올해만 집배원 12명을 포함한 23명의 우정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시민의 발인 버스운전 노동자들의 과로는 졸음운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들이 사라졌다. 환자를 치료해야 할 백의의 천사인 간호사들은 거꾸로 병들어 간다. 의료사고가 발생할까 마음을 졸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도대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살인범은 누구인가. 살인범은 바로 근로기준법 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에 관한 특례' 조항이다. 노동시간 특례는 애초 공익 목적이 이유였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규제가 완화되면서 인력을 감축하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 갈 만큼 과도한 노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집배원·버스운전 노동자·간호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은 모든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한다. 장시간 노동은 뇌심혈관계질환·소화기계질환·수면장애·암에 이르기까지 각종 건강문제의 원인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만성피로·수면부족은 대형사고 유발 가능성을 높인다. 노동자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한 연구 조사에서는 4시간 이하로 수면시간이 부족할 경우 자살을 생각할 확률이 2.5배, 우울증 위험도는 4배 높은 것으로 나왔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이윤추구가 노동자 생명보다 먼저일 수 없다. 이제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

흉악한 살인범은 누가 잡아야 하나. 바로 국회다.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이지 못하도록, 살인범이 날뛰지 못하도록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근로기준법 59조를 폐지하면 된다.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장시간 노동에 의한 노동자 살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회에 간절히 요구한다. 더 이상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지 말라고. 제발 살려 달라고. 근로기준법 59조를 폐지하라고. 살인범을 잡아 달라고. 국회가 과로사 공범이 아닌 과로사를 몰아내는 국민 안전지킴이로서의 책임을 다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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